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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을 못하시던 아빠의 어느 날

by 미뚜리

새벽이었다.

아빠는 내게 다급히 전화를 하셨다.

무슨 이유일까?

왜 한밤 중에 요양원에 계신 것이 아니고

밖에 계시다고 하시는 걸까?

심지어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안 하던 응석은 뭘까?

스스로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시내 한복판에 두고 요양사 선생님이

혼자 요양원으로 돌아가 버리셨으니

택시비 5만원을 보내달라 하신다.

당황은 되었지만

그래도 아빠가 걱정된 마음에

주은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경찰서에 바로 신고를 했다.

곧바로 달려와주신 경찰 선생님.

그렇지만

한밤 중에 주은이를 혼자

아래층으로 보내긴 두려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도 주은이를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었다.

경찰 선생님들은 위치 추적을 하신 모양이다.

아빠는 요양원에 계신 것이 맞았다.

그렇다면, 왜 요양원이 아닌

밖에 계시다고 한 걸까?

순간 두려웠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응석일까,

치매 증상이 생기신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던 한밤이었다.


누구나 삶에 있어 위기는 온다.

오늘 같은 경우는

주은이에게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을 위해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날.

오래도록 차를 타고 와서 너무도 피곤할 건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된 현실로

마음은 많이 신경 쓰이고 속상한 그런 새벽이다.


아침,

아빠는 내게 전화하셨다.


"오늘 병원 가는 날인데 병원비가 없어

그러니까 네가 병원비 10만원을 챙겨서

빨리 좀 와줘"


라고 부탁 하셨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나는 둘째 오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가 밤에 이런 상황이 있었다고

사실을 이야기하니

오빠는 말했다.


"너는 그냥 집에 있어,

돈은 개인적으로 내지 않아도 돼.

요양원에 드린 아빠 카드로 수납 하시기 때문이야.

그니까 병원비 근심은 안 해도 돼.

어쩜 아빠가 가고 싶다고

응석을 부리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래, 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다시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요양원에서 9시에 출발한대

너 어디야?어디에 있어?"

"미안해 아빠 오늘 못 갈 것 같아.

주은이도 아직 못 일어났고

그 대신 내일은 꼭 보러 갈게"


그러자 아빠는 무언가 속속상했는

"에이" 하며 화를 내셨다.


하루 종일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그런 하루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혼란이 마구 생기던 그런 하루였다.


토요일 아침.

다른 때와 똑같이 주은이와

장애인 콜을 타고 친정 집에 갔다.

둘째 오빠도, 그리고 엄마, 아빠도

요양원에서 외출해 이미 와 계셨다.

어쩌면 엄마보다 아빠가

이 상황을 더 인정하기 힘든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빠가 많이 안쓰러워 보였다

문 여는 소리가 났다.

큰댁 큰 오빠 부부도 함께 오셨다.

아빠의 모습을 보시고 언니는 마구마구 울고 계셨다.

언니 말이 맞다.

엄마가 치매가 아니었다면

아빠가 덜 고생하셨을 거고

어쩌면 지금쯤 아빠를 엄마가 보살폈을지도 모른다.


딸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조금은 속상했다.

언니는 김밥을 직접 싸 가지고 오셨나 보다.

다 같이 그 김밥을 같이 나눠먹고

딸기도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3월인 오늘이 명절날 같았다.

그래도 부모님이 계시니까

이렇게 북적북적 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엄마, 아빠가 고맙기도 하다.

오늘은 막내오빠도 오게 되었고

아빠의 재촉으로 큰오빠도 집에 오려나 보다.

그런데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주은이와 나는 제일 먼저 친정집을 빠져나왔다.

잠시 우리는 장을 보러 갔다가 바로

집으로 왔다.

오늘 엄마, 아빠도 요양원에 잘 들어가셨을까?

아빠는 앞으로 잘 적응하실 수 있을까?

얼마나 잤는지 잠에서 깨었을 때

바깥은 깜깜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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