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건강하실 땐
한주 전부터 서둘러 준비하시던 게 기억난다.
집 앞에 대문만 나서면 밭이었다.
웬만한 시장보다 종류는 엄청 많았다.
그런 엄마는 늘 부지런하셨다.
배추를 밭에서 뽑고, 다듬고, 절이고.
나는 그 단계만 해도 버거웠던 건
자식들 것도 해주시다 보니
해마다 120 포기는 만들으셨다.
그리곤 양념 준비를 위해
까고 다듬고 갈고 써는 여러 단계를
순식간에 해치우던 엄마의 부지런함.
그리고 절인 배추를 일일히 씻고, 물을 빼고
그 사이에는 모든 준비된 양념을
큰 다라에 넣고 버무렸다.
그러고 나서야 물 뺀 배추를 나르고
여자들은 모두 둘러앉아
배추에 그 속을 넣고 또 넣고
빨갛게 변해버린 배추들은
한 해를 약속하며 통에 담기고 또 담긴다.
마무리가 보이려 할 때,
싱싱한 배추와 삶아진 돼지고기.
한 입 먹고 가족에 웃음꽃이 피던 김장날.
그러나 부모님이 더이상
농사도 못 지으실 만큼 쇠약해지셨고,
농사를 포기하게 되었다.
몇개월 전 요양원에 두분 다 입소하게 되었다.
아빠는 지병으로, 엄마는 치매로.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해서 만나는 기쁨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늘 건강하셨던
그때의 그리움이 쉽게 지워지질 못한다.
요번에는 둘째 오빠가
조금씩 밭을 일구어 내고
그것으로 첫 김장을 친정집에서 부부끼리 한 모양이다.
며칠 전 아빠가 이야기하실 때 이해를 잘 못했다.
"여기 와"라고 이야길 하셨지만
친정집을 말하는지 요양원을 말한 건지
살짝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둘째 오빠는 내게 전화를 했다.
김치 주려고 하는데 집에 있냐고 한다.
하필 주은이와 외출할 때라서
약속은 결국 저녁 6시로 미뤄졌다.
김치 한 통과 열무김치도 같이해서 가져 오셨다.
그러게 참 기쁘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차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서투른 나는
어물쩡 하다가 말았다.
결국 오빠 부부가 가고
우린 밥상을 차려 저녁밥을 먹는데
문득 감동 받았다.
해마다 동사무소나 시각 협회에서
또는 교회에서 김치를 주셨는데
친정 김치는 오랜만이라 괜스레 감동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