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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최 Nov 14. 2023

프롤로그: 그림책 읽어주기의 정석

그림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어린이집 등원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이가 도통 책장 앞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엄마, 보세요. 여기에 이 책이 있었어요." 한동안 아주 재미있게 보던 숨은 그림 찾기 책을 발견한 거다.


아이는 결국 그 그림책을 들고 등원을 했다. 선생님께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혹시 이 책을 원에 들어가서 이어서 봐도 되는지 여쭤보니, 괜찮다고 하셨다. 신발을 벗을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 두 아이의 엄마인 선생님은 "아니, 어떻게 하면 이렇게 책을 좋아할 수 있나요?" 놀라며 물었다.


생각했다. 그림책을 싫어하는 아이도 있나? 그래, 혼자서 그림책을 보지 않는 아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그림책을 읽어줄 테니 오라고 손짓할 때, 싫다고 도망가는 아이는 없지 않을까(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올 때 도망가는 부모는 있을 듯).


도서관에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으면  하나 둘, 내 곁으로 모여드는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좀 재미있게 읽어준다(자랑 맞음). 아동문학교육 전공자에, 그림책을 만들었던 에디터이고, 그림책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도 있으니 못 읽어주는 게 이상하지 않겠나. 하지만 우리 집 아이도 다른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줄 때 기웃기웃 거리는 걸 보면 잘 읽어주고 못 읽어주고는 크게 영향이 있는 거 같진 않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몰린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성인을 대상으로 그림책에 대한 교육을 진행할 때면 그림책 한 권을 온전히 읽어주는 시간을 갖는다. 글을 읽어줄 테니 귀로 들으면서 그림책의 그림에 집중하라고 한다. 그때 한결같이 들었던 말이 그림책이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구석구석 살펴보게 되니 더 집중해서 읽게 되고, 스토리에서 오는 감동도 더 크게 느껴진단다. 직접 경험해 보니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어 줄 때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며 입을 모았다.


그림책, 어떻게 읽어줘야 잘 읽어줬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보다 부모들은 그림책 읽기를 어려워한다. 특히 아이가 글 없는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가지고 오면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글자가 없는데 뭘 읽어달라는 거지? 부모둥절). 그림책을 흔히 '아이코노텍스트'라고 하는데, 아이코노텍스트는 그림책의 글과 그림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할 때 쓰는 용어다. 글로도 그림으로도 보기 어려운 '제3의 텍스트'를 지칭한다. 넓게는 글, 그림, 책을 이루는 물리적 요소(표지, 판형 등)들의 삼중적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말이 좀 어려운데, 쉽게 설명하면 그림책은 글과 그림, 책 자체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글만 읽거나, 그림만 보는 것으론 그림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보기 어렵다(흠, 뭐가 쉽게 설명했다는 거지). 무엇보다 그림책에서는 그림을 읽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림 읽기란 그림 속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로 풀어서 생각하는 '언어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림을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읽어내야 하기에 '그림 읽기'라고 한다(<그림책 페어런팅>, 김세실). 그림 읽기는 어떻게 하는 거냐 묻는다면, 이걸 또 설명하기 시작하면 책 한 권 분량인데... 간단히 말하면 글을 나침반 삼아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더 궁금한 분들은 <그림책의 그림 읽기>를 도서관에서 빌려보세요. 절판돼서 구매는 몬합니다;;)


내가 배운 대로 그림책을 읽어 준다면 대충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1. 먼저 책의 제목과 표지를 탐색한다.

2. 면지를 보며 내용과의 상관관계를 유추한다.

3. 그림책의 글과 그림을 읽으며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나눈다.

4.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독후활동으로 다지기를 한다.

(간단하게 글로 쓰고 보니 이것도 너무 어려워 보이는 구만. 앞으로 차차 설명해 보는 걸로).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발문이다. 부모가 그림책을 먼저 읽고 충분히 이해한 뒤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그림책에서 글만 줄줄줄 읽어준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고(그림책은 그림 읽기가 핵심이라 좀 아쉽긴 하지만 아이들은 귀로 부모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 그림을 탐색하니까 뭐), 미리 책을 숙지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을 끝까지 읽어주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도 아니다.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다면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나는 그림책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흔히 선배들이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으면 애부터 낳으라고 했던 말은 정말이었다. 그림책 이론을 공부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던 의문들이 해소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그랬다. 결혼 전에는 엄마를 잡아먹겠다고 소리치는 주인공 맥스의 대사가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니, 그림책에 어떻게 이런 말을 쓰지?'라고 생각했다(그때는 착했나 봄).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잡아먹고 먹히는 놀이를 한다(부위별로 먹겠다고 덤빈다. 나도, 애도).


'그림책 읽어주기'는 내가 알고 배운 것들을 실제로 실험해 보는 실험의 장이기도 했다(딸아, 미안하다). 잠시 피아제로 빙의해 그림책에 대한 이러저러한 속설들을 실제로 검증(?) 해 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림책을 녹음해서 들려주는 건 소용없다. 엄마가 읽어줘야 한다.',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그림책 읽기를 싫어한다, ' 등등


생각해 보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 쉽게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이 그림책 읽어주기여서 나는 그렇게 주야장천 그림책만 읽어주었던 것 같다(시간 때우기 최고). 책육아에 어떤 큰 뜻이 있거나,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리라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이든, 체육이든 부모들이 편하게 할 수 있는 걸 선택해서 좀 더 마음 편하게 아이들을 키우면 좋겠다(세끼 밥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드니까요).


'저기요, 저는 잘하는 게 없는데요. 만사가 귀찮아요.'라고 생각하는 (나와 같은) 부모들이 있다면, 제일 만만한 그림책 읽어주기를 추천한다. 그렇게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면 러키! 당신은 아이를 더 대충 키울 수 있는 무적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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