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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최 Nov 16. 2023

그림책 고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0-1세 말문이 트이는 그림책 읽기] 1_그건 전공자에게도 마찬가지

출산준비물 리스트를 보면서 현타가 왔다. 신생아를 위해 초점 그림책을 준비하라는데 갑자기 어떤 걸 사야 하지? 머릿속이 하얘져서다. 예전에 라이선스로 들여온 초점책을 번역해서 판 적도 있는데, 그때 시장조사하면서 공부했던 내용들이 한 트럭인데 다 까먹었다(미친 기억력). 부랴부랴 검색에 들어갔다. 검색으로 발견한 책들을 살펴보는데 다행히 새록새록 옛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이책을 만드는 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떤 그림책을 사야 하나?"다. 이 질문은 보통 신생아부터 유아기까지 반복된다. 전집을 사야 하는지, 산다면 어떤 전집을 사야 하는지, 전집을 안 산다면 단행본은 뭘 사야 하는지. 순했던 친구들이 다들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나를 위협한다. "아니, 그냥 보고 맘에 드는 거 아무거나 사." VS "그게 안되니까 너한테 물어보는 거지!"


요즘엔 좋은 그림책의 기준이라는 게 생각보다 모호하다. 하루에도 수백 권씩 그림책이 쏟아지다 보니, 더 고르기 어렵다. 개인취향도 많이 타고, 가치관에 따라서도 갈린다. 나한테는 좋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별로인 책들도 있을 테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다. 그림이나 내용이 내 눈에 좋은 책들. 돌잡이 아이는 아직 스스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를 수 없으니 엄마인 내가 골라서 줄 수밖에 없다.


육아에 있어서 부모의 가치관은 정말 중요하다. 그게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그림책을 고를 때다. <무지개 물고기>를 읽으며 왜 나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책을 아이와 함께 읽으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이런 사람 없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고, 그런 아이들도 많다).


좋다고 생각했는데 종종 단종돼서 구할 수 없는 그림책들을 발견한다. 그럴 때면 내가 너무 마이너 취향인가 싶어 흠칫하기도 하는데(마이너 맞다, 커밍아웃), 뭐 그럼 어떠랴.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뭐.


아이의 생일 때마다 선물 대신 좋은 그림책을 골라서 달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한번 아이가 요즘 즐겨 읽는 책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림책 몇 권을 골라 보내준 적이 있는데, 그때 친구가 말했다.


 "내가 도서관에 가서 고르면 다 이상한 책만 고르게 되던데 너는 어쩜 이렇게 좋은 책만 골라?"


(이럴 때 보면 완전 마이너는 아닌 듯). 사실 나도 도서관에 가서 제목만 보고 꺼내서 볼 때면 이상한 책 많이 고른다. 며칠 동안 도서관과 서점에 가서 찾아서 읽어보고 보내는 수고로움까지 친구에게 배달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하지 않았을 뿐(사실은 전문가인척 하려고 말 안 함).


다행히도 아이는 내가 고른 그림책들을 좋아했다. 방바닥에 장난감과 함께 늘어놓으면 많은 장난감 틈에서 책을 가지고 엉덩이 쿵쿵 거리며 다가올 때면 어찌나 귀엽던지. 물론 그중에서도 아이가 한번 더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책, 자주 집어 오는 책들이 있었다.

 

물려받은 책들을 보여줄 때면 한 살도 안된 아이에게 취향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분명 친구의 아이는 자주 봐서 닳고 달았는데 우리 딸은 쳐다도 안 본다든지, 새것 같은 것을 물려받았는데 우리 아이 손에서 너덜너덜 해진다든지. 내 눈에 너무 촌스럽고 내용이 이상하다 생각되는 책들을 좋아라 할 때면 이건 또 뭔가 싶기도 했다. 그래, 엄마의 취향과 아이의 취향이 다를 수 있지.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쉽다(물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몇몇은 아기가 잘 때 살짝 숨겨놓기도 했다. 하하).


그러니 그냥 그림책을 가까이하고 많이 읽어주면 된다. 굳이 필독서에 목멜 필요 없다. 책 고르다가 시간을 다 허비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발달에 적합한 책이면 된다. 책이라는 장난감을 같이 가지고 놀아주면 된다. 아이는 부모와 숨을 맞대고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며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들 테니.



@그림책 읽어주며 말 2배로 많이 하는 법


돌 이전의 아이와 그림책을 읽어줄 때면 대화가 안 돼서 답답하다. 아무리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이란 고작 "에에, 꺄아아" 정도의 옹알이일 뿐이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하다. 내용은 또 어찌나 짧은지, 말 좀 빨리 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는데, 막상 읽어줄 게 별로 없으니 난감하다. 그럴 땐, 요 방법이 요긴하게 쓰인다. 일명 '아이로 빙의(?)' 되기. 돌쟁이 아이와 덜 심심하게 그림책을 읽는 기특한 방법이랄까.


예를 들어 자연관찰책을 보다가 코끼리가 나오면 "00이 언제 코끼리 봤었지?"라고 아이에게 물은 뒤 "저는요, 코끼리 진짜 좋아해요. 지난주에 동물원에 가서 아빠랑 엄마랑 코끼리 봤어요. 정말 크고 코가 길었어요. 그런데 똥냄새가 많이 났어요. 그래도 다음에 또 코끼리 보러 가고 싶어요." 이렇게 아이의 입장에서 말을 덧붙이는 거다.


이 역할대행극(?)은 책 읽을 때뿐만 일상생활의 모든 순간에 적용할 수 있다. 밥을 먹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하다못해 똥을 쌀 때도 매 순간 나는 아이가 되어 아이처럼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매일같이 목감기에 걸린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살았지만.


지금은 그림책을 읽을 때 꼬박꼬박 말대꾸를 너무 잘하는 딸 덕분에 말문이 막힌다. 더 덧붙일 말도 없다. 때때로 이 시절이 그리운 이유다.


지금 우리는

엄마가 감기 걸려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읍소해도 눈 깜짝 안 하고 그림책을 들이미는 딸. 너 T니?


오늘도 도서관에서 '이게 마지막이야'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겨우겨우 책 한 권 빌려서 가자고 살살 꼬셔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며 문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집에 가자 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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