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최 Nov 23. 2023

어서 와, 서사가 있는 영아책은 처음이지?

[0-1세 말문이 트이는 그림책 읽기] 2_'달님 안녕'이 빛나는 이유

신생아 세상은 하양과 검정 같은 무채색이다. 생후 2개월은 되어야 빨강과 파랑 같은 기본색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첫 책은 다들 초점책을 산다. 물론 나도 샀다.


내가 고른 초점책은 글밥이 제법 있는 병풍책이다. 왜 글밥이 있는 걸 골랐냐면, 단순하다. 오래 우려먹기(?) 위해서다. 신생아는 누워만 있으니 주변에 빙 둘러 보여 줄 수 있는 형태가 좋아서 병풍책을 샀던 것이고. 사실 초점책은 다 거기서 거기라서 그냥 취향대로 고르면 된다.


 목도 좀 가누고 제법 사람처럼 손발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100일 즈음에는 헝겊책을 구매했다. 헝겊책은 손으로 잡아서 조물딱 거릴 수 있어 시각과 청각, 촉각 등 다양한 자극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물고 빨고 해도 자주 세탁 할 수 있으니 뭐든 입으로 들어가고 보는 이 시기에 딱 맞다(무형광 추천!).


발달에 적합한 책을 고르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렇다고 이 시기에 이 책을 꼭!이라는 말은 난 좀 별로다. 오히려 그렇게 사서 어떻게든 본전을 뽑겠다는 각오로 덤비는 게 더 무서운 거 같다. 꼭 읽혀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면 아이는 쉽게 뒷전이 된다.


아이에게도 그렇지만 부모의 정신건강에도 나쁘다. 특히 비싼 새 전집을 쫙 들여서 책장에 꽂아 놓으면 물론 뽀대가 나서 기분도 좋고, 막 좋은 엄마가 된 거 같아 뿌듯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혹시 책을 물거나 뜯거나 던져서 훼손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기 쉽다. 중고로 팔려면 깨끗하게 봐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서 책을 뺏어 들게 된다. 나도 비싼 팝업북 몇 번 보여주다가 이런 적이 있다. 내가 지금 책을 보여주는 건지, 못 찢게 말리는 건지. 스트레스가 테트리스 게임처럼 차곡차곡 쌓이다 폭발한다. 그러니 애초에 그럴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참고로 그 팝업북은 더 이상 테이프로도 소생할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 해진 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셨다.


이 즈음 나는 <사과가 쿵>, <두드려보아요>와 같은 보드북들을 하나 둘 사들였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 두 군데에서 한 달에 2천 원 정도씩 쿠폰을 주는데 쿠폰 받아서 무료배송되는 아기책을 두권 샀다. 두 군데이니 2주에 한번 꼴로, 한 달에 4권을 산 셈이다. 너무 적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그럴지 모르는데 이게 또 쌓이다 보면 은근히 많다. 물론 내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보드북들이 여러 권 있었다. 그것을 포함해도 처음 시작은  20권이 되지 않았다.


영아책을 읽어주면서 의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던 점은 서사가 있는 영아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영아책들은 대부분 작은 판형에 단순한 그림과 짧은 글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중첩 반복되는 형태의 스토리가 많다. 예전에 책을 만들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막상 내 아이를 낳아 읽어 줄 책을 고르다 보니 좋은 이야기가 있는 책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나 싶어 도서관과 서점을 뒤졌으나 아쉽게도 그런 책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몇몇 서사가 있는 보드북들은 글밥이 적지만 그 내용이나 구조가 돌 전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그냥 무늬만 영아책이었다. 그만큼 이 시기 영아들의 눈높이에 맞는 서사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새삼 느꼈다.


그래서 <달님 안녕>이 더 빛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 딸아이가 가장 좋아한 책도 역시 <달님 안녕>이었다. 짧은 이야기에 어쩌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꽉꽉 알차게 채웠는지. 아이는 <달님 안녕>을 읽어줄 때마다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구름 아저씨가 달님을 가리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읽어주고 있으면 뒤통수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건 보드북이 아니라 양장본 버전이었는데 나중에는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져 테이프로 도배가 될 지경이었다.


좋은 서사를 담은 영아책이 이렇게나 없다고?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야겠군! 하고 호기롭게 덤볐는데... 스토리라인을 몇 개 짜봤으나 어쩜 하나같이 다 <달님 안녕> 비스름하게 전개되는 건지. 아, 출판사를 십수 년째 먹여 살리는 대작(?)은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구나 생각하며 후다닥 접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다. 그림도 별로고 내용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작품이 몇 년째 판매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성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책들이 그렇다. 자아존중감을 키워준다는 유명 베스트셀러 책을 보는데, 아니 남과 비교해서 자아존중감이 올라가는 게 맞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게 또 한 끗 차이라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내 생각과 가치관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 정신없이 흘러가는 육아의 쓰나미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내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좋다고 소문난 전집을 싸게 사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훨씬 더 부모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러다 보면 좋은 책을 스스로 찾아볼 줄 아는 안목도 생길 거라 믿는다.


@나만의 이야기 만들기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대략 어떤 사람인알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부모는 그림책을 읽어 줄 때 본문에 있는 글을 곧이곧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읽어주는 반면(너 J니?), 어떤 이는 글을 읽어주긴 하는데 내 맘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좀처럼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삼천포로 자꾸 빠진다(응, 나 P야).


나는 후자일 때가 많은 편인데 특히 글밥(글줄, 그림책 속 글의 양)이 적은 영아책은 읽어 줄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전자의 읽기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하나의 그림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가와 편집자가 얼마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작업하는데(정말 문장부호 하나까지 고민한다. '느낌표를 넣어말어?'). 그림책은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다.


하지만 일단 한 권의 그림책이 우리 손에 들어온 이상 어떻게 읽어줄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마음이다. 그러니 마음껏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도 좋다. 특히나 글 없는 그림책은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에 특화된 책이다. '글이 없는데 뭘 읽어달라는 거지?' 당황하는 건 이제 그만. 한 장의 그림을 보면서(약간 MSG를 넣으면) 한 시간도 떠들어댈 수 있다. 이런 내 맘대로 책 읽기가 영아기에 수용언어를 발달시키는 좋은 도구가 되는 건 물론이다.


지금 우리는

얼마 전 아이의 쇄골뼈가 부러졌다. 팔을 쓸 수 없으니 밥을 먹는 것도, 손을 씻는 것도,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내리는 것도 다 졸졸졸 쫓아다녀야만 했다. 아, 이건 신생아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집에 가면서 읽겠다고 떼를 쓰는 게 아닌가. '팔 아픈데 어떻게 들려고?'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거운 그림책을 빼앗아 든 너.


거참 이상하네. 왜 그림책 들 때는 팔이 안 아픈 거니?



이전 02화 그림책 고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