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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Sep 17. 2023

구스띠모 세계여행 | 미미

미얀마에서 온 가족


미미와 나는 말없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에는 저 멀찍이서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 계속 내가 미미 앞에서 알짱거렸다. 조카를 보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코사멧에서 나는 거의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편집하거나 책을 읽고, 미미랑 무언의 대화를 하다가 바다에 잠시 다녀오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계단을 슬쩍 내려다보면 아래층에서 미미가 엄마를 도와주고 있었다. 미미가 나를 못 볼 때 ‘미미!‘ 하고 부르면 꺄르르륵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학교를 안 다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갔던 시기가 태국 공휴일이어서 하루종일 미미가 숙소에 있었던 것이다.

똘똘한 눈이 너무 귀여웠던 미미. 하루 이틀 지나니 동네에 같이 뛰어노는 미미 또래의 아이들이 보였는데 미미는 하루종일 엄마랑 숙소에만 있었다. 사실 ’ 친구가 없는 건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코사멧을 떠나기 전 날 미미네 가족이 미얀마에서 온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됐다. 리셉션에 있던 남자 스탭이 미미 아빠라는 게 꽤나 충격이었다. 아무튼.


여기서 미얀마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미얀마는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라다. 미미네 가족은 1년 전, 그러니까 미미가 6살 때 태국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게 되었다고 한다.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만난 현지 친구도 전쟁이 난 후 어떻게든 자신의 나라를 도우려 하다 결국 해외로 일을 하러 떠났다.


고작 태국에 온 지 1년밖에 안 된 애기가 태국어를 못하는 건 당연했다. 내가 가장 충격적이고 안쓰러웠던 건 미미 엄마가 미미가 군인들이 총 쏘는 장면도, 사람들이 끌려가는 장면도 다 그 아이의 눈으로 봤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미미한테 미얀마 이야기를 꺼내자 미미가 갑자기 손을 들어 총 쏘는 흉내와 수갑으로 사람을 체포하는 모션을 했는데, 좋은 것만 봐도 모자랄 어린 나이에 충격적인 모습을 본 것이다. 너무 속상했다.



원래대로라면 코사멧에서 5박 6일을 지내고, 방콕에 가서 고등학교 친구와 6년 만에 만나야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기다리는 와중에 미미의 엄마가 오늘 미미의 생일이라며 생일파티에 오라고 나를 기꺼이 초대해 주셨다. 너무 아쉬운 마음으로 보트를 기다리던 중에 우연찮게 체크인을 하는 한국인 언니를 만나게 되었고, 흔쾌히 자신의 방에서 같이 자고 가자던 언니의 제안에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짜 미안한데 나 여기 하루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미미를 처음 봤던 날 엘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생일선물로 내가 그동안 썼던 엘사 암튜브와 아동용 미니카메라를 선물해 줬다. 그리고 미미에게 생일파티에 꼭! 참석하겠다며 약속하고 경일언니와 잠시 바다에 다녀왔다.


생일파티한다고 분홍색 옷을 입고, 내가 준 시나모롤 핀을 머리에 꽂고 온 미미는 너무너무 귀여웠다. 귀엽다는 말 외의 표현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마땅한 빵집이 없는 코사멧에서 미미의 엄마는 아침부터 케이크를 픽업하고 냉장고에 넣어놨다고 했다. 같이 생일 노래를 부르고, 생일 초를 부른 후에 미미는 케이크를 한 입 떠서 나에게 가장 먼저 건네주었다.


아이들은 참 순수하다. 한국에 살면서 한동안 사람에 질려 인간관계를 스스로 끊어내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 미미와 미미의 가족과의 인연으로 코사멧에서 지내는 동안 사람에 의해서 내가 충전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긴 하지만. 여행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중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 사람들에 의해서 충전을 얻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인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나라 미얀마에서 온 가장 순수하고 예뻤던 아이 미미. 일주일 동안 정이 너무 들어서 코사멧을 떠나던 날에 눈물이 조금 났었다. 미미엄마는 내가 코사멧을 떠난 이후에도 종종 미미의 학교생활이나 미미의 사진을 내게 보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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