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원피스를 기억하니?
내가 아주 유명해지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밝힌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아주 유명해지면"이라는 전제부터 너무 부끄럽고 허황돼서 말을 꺼낼 수 없었던 탓이다.
지금도 있으려나?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나와서 첫사랑이나 친구, 옛 은사님을 찾고 하던 프로그램.
나도 나가서 꼭 찾고 싶은 한 사람이 있었다. 꼭 찾아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고 싶은 한 사람.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다른 기억은 단편적으로밖에 못하면서 이 기억은 기승전결이 모두 확실한 걸 보면
오랜 시간 엄청난 죄의식에 시달려 온 것임에 틀림없다.
학교에서 서예를 하는 날이었다. 시간표를 고려해서 의상을 코디할 리가 없는 나는 그날따라 엄마가 새로 사준 요트가 그려진 빨간 원피스를 골라 입었었다. 맘에 들지 않는 옷은 아무리 예쁘다고 칭찬해도, 아무리 혼이 나도 절대 입지 않았던 내가 자진해서 입은 옷이었으니 아마도 무척 좋아했던 옷이었던 것 같다.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한 반에 60-70명이 콩나물시루의 콩나물같이 촘촘히 앉아 있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신문지를 펴고 벼루에 먹을 갈아 쓰고 있을 때, 뒤에 앉은 친구가 그만 내 옷에 먹을 쏟아버렸다.
빨간 원피스에 촘촘히 떠 있던 요트도 까만 먹으로 지워져 버렸다.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그것도 새 옷에 세탁을 해도 지워지지 않을 먹을 잔뜩 쏟아버려 다시는 입을 수 없게 만든 친구가 너무 미웠다.
분노와 교실의 친구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에 대한 부끄러움에 굳어진 나와, 아마도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에 얼어버린 친구는 잠시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한숨에 달려오셔서 주변을 정리해 주셨고, 먹을 쏟은 친구를 향해 나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다.
그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나에게 작은 소리로 작아진 몸으로 사과를 했다.
위선적인 나는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너그러운 마음을 지닌 같은 반 친구를 연기했다.
그러고 나서 맘 속으로는 부글부글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서예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안 보는 틈을 타 신속하게 그 친구의 등 뒤로 가서 있는 힘껏 어딘가를 꼬집고 나서야 내 감정을 추스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친구는 아!라는 소리조차 못 내고 있었다.
그때도 그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소심하지만 날카로운 복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의 복수가 잔인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 아이 뒤에 보호해 줄 그 누구도 없다는 사실을 내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친구는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친구였다.
지금의 보육원, 아동양육시설이라는 어휘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보호막이 아닌 낙인이 먼저 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곳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에 대한 시선은 차갑고 배타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반에서도 유명한 장난꾸러기에 말썽장이었다.
그런 친구가 아!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 아픔을 견뎠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내가 과연 그 친구가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런 잔인한 복수를 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부끄럽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떤 50대를 보내고 있을까?
빨간 원피스를 기억하고 있을까?
유명해지지 못해 이렇게 밖에 사과와 참회의 마음을 보낼 수 없지만
그 친구는 그 음침한 복수를 묵묵히 견뎌냈던 것처럼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꿋꿋하게 씩씩하게 이겨낸 강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만 같다.
정말 미안했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