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에게 가는 길
방학도 되고 했으니 그동안 보고도 모른 척하고 있던 집안일들을 슬슬 시작해 보려고 두리번거리니 가장 먼저 신경이 쓰이는 게 아이들이 한 번 입고 던져 놓은 옷가지들이다. 집에서 입는 옷은 사나흘 입고 빨래통에 넣어 놓으면 세탁을 하겠건만 하루 입고 방에 던져 놓고 그다음 날 또 새 옷을 꺼내서 입고 던져 놓는다.
의자에 척척 걸쳐 놓은 옷이 한 보따리다. 옷장에 넣자니 한 번 입은 옷을 넣기도 싫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옷걸이 행거를 사기로 했다(청소라는 건 있던 것을 처분하고 정리하는 거라던데 나는 왜 늘 뭐가 늘어날까?).
남편과 함께 이케아로 길을 나섰다.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 매번 갈 때마다 헤매는 노정이다.
연애할 땐 자기는 동물적인 방향감각이 있다며 동경 시내 꼬불꼬불 걸어서 잘도 목적지까지 도착하더니,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남편은 운전대만 잡으면 표지판을 알려달라 간판을 찾아라 요구가 많다. 당신들 차에는 네비게이터가 없습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있기야 있습니다만.....
서울에서 언니 차를 탔을 때 "ㅇㅇ야, 엄마한테 전화 걸어줘"하니 "네, 알겠습니다"하던 네비를 보고 무슨 미래 세계인가...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우리는 아들이 태어나기 1년 전에 산 중고차를 아직도 타고 있으며(현재 아들 15살) 네비가 있긴 하나, 중고+15년이니 기계 자체가 오래된 데다가 강산이 한 번 이상은 변한 시점이라 녀석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래도 잘 굴러가는 차 안에서 절대 차의 험담은 하지 않기로 한다. 네비가 없어도 고장 안 나고 튼튼하고 고마운 우리의 발이다.
이야기가 좀 샜다. 암튼 어느 지점에서 남편이 "어디더라....."하고 두리번거리더니 너무나 자신 있게 우회전을 한다. 우와... 역시 동물적 방향감각이 살아있네..... 싶어 물었더니 바로 앞에 가는 차의 번호판이 우리 동네라서 따라가는 거라 한다. 응???? 앞차가 이케아 간다고 당신한테 연락을 했던가요? 남편은 이런 황당한 일을 자주 저지른다. 코스트코 가는 도중에 정체가 되면 이 차들 다 코스트코 가는 거니까 복잡해서 안 되겠다며 집에 가자고 하는 일도 다반사.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단정 지을 수가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확실하지도 않고 근거도 없는데 말이다.
반대로 나는 어쩔 땐 내 감정조차 의심할 때가 많았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이거 내가 화내도 되는 건가? 다른 사람들은 다 웃어넘기는 일인데 혼자 속 좁게 이러는 거 아닌가? 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때가 많았다. 아이들을 훈육할 때도 내 기준으로 판단하면 될 것을 늘 우왕좌왕이었다. 그리고, 다 같이 외식을 할 때도 세 사람은 각자 먹고 싶은 것이 달라 투닥거릴 때도 난 정말 무엇이 먹고 싶은 지 잘 모를 때가 많았으며, 있더라도 저렇게 먹고 싶다고 아귀다툼을 하는 속에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결판이 나기만을 기다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자아가 강한 남편과 그에 못지않게 강한 두 아이들 덕분에 나도 조금씩 "나"라는 걸 찾아가는 것도 같다. 이젠 기다리다가 아귀다툼이 끝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만!!!! 오늘은 집에서 먹는다!"라고 강한 자기주장을 할 수도 있게 되었고 아이들의 자기밖에 모르는 예의 없는 태도에는 "버르장머리 없구나. 선을 지키자!"하고 결연히 대응할 수도 있게 되었다(한국어를 뜨문뜨문 알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엄마의 험악한 얼굴 덕분에 이 추상적인 대사의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자아가 강한 타자(他者)가 있음으로 인해 자아가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각되는 것이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 "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서 "내"가 발견되는 놀라움. 내가 이처럼 사소하고 무덤덤한 이야기들을 부끄러움을 참고 여기에 적어 두는 이유도 어쩌면 그 놀라움의 순간을 조금 더 많이 오래 잡아 두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글이 너무 서투르고 사유가 부족해 "당신과는 無理"라는 홀대를 받더라도, 그게 지금의 "나"이기에 인정하고 수용해 가면서 천천히, 조금씩 누군가와 이 관계를 맺어 가고 싶다. 그 과정 속에서 "나"를 찾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