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동물원

인간 말고 다른 존재가 보고 싶었던 날

by 혜준

며칠 전부터 딸아이가 동물원에 가자고 한다.

친구들이랑 가지 왜 나랑? 게다가 왜 하필 동물원?

난 원래 동물원이 싫다.

야생에서 멀쩡히 잘 사는 동물들을 일부러 잡아다가 인간들 좋으라고 가둬 놓고 구경하는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싫다고 딱 잘라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딸이 이 세상에서 제일 거절하기 어려운 상대인 것은 확실하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할 수 있지만 할 수 있는 걸 안 하겠다고 하기가 참 어려운 게 부모자식 간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세상 엄마들의 황혼육아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일까?



다행히 맑고 그리 춥지도 않아 동물원 가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요즘엔 영화 보러 가자고 해도 좀처럼 따라나서지 않고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해도 영 반응이 시원찮던 딸아이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동물원을 가자고 하는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며칠째 계속 학교 가기 싫어를 노래 부르듯 하더니, 난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아니에요!!! 하고 자유선언이라도 하려는 걸까? 가기 전부터 힐끔힐끔 딸아이 눈치를 보게 된다.

표정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동물원에 도착하면 무슨 말이 나오려나.....



우리는 동물원 안내 지도를 따라 친근한 포유류들과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현란한 새들, 곤충들을 정신없이 보고, 마지막엔 사자들이 잠만 쿨쿨 자서 돈만 아까웠던 라이온 사파리 버스로 마무리를 지었다.

중간에 점심을 먹으며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딸아이에게 왜 동물원에 오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딸이 하는 말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를 좀 보고 싶었다고 한다.

내 궁금증은 더 증폭되어 갔다.

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보고 싶었어?

그냥......

그냥이 어딨어? 네 무의식이 왜 여길 오고 싶어 했는지 잘 좀 생각해 봐.

음.......

인간이 싫어졌어? 왜 인간이 싫어졌을까? 친구랑 무슨 일 있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

딸이 내 질문을 피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화면 속으로 도망을 간다.

무안해진 나도 휴대폰을 꺼내 찍어 놓은 영상을 들여다본다.

다정하게 서로를 얼싸안고 털을 매만져 주는 오랑우탄 모자, 수컷이 암컷을 에스코드 하듯이 묵묵히 뒤따르던 늑대 두 마리, 마치 런웨이를 걷는 듯한 우아한 자태의 치타, 유칼립투스 잎을 단정하게 먹고 있는 코알라 가족……


들여다보다가 문득, 딸에게 향하던 "왜?"라는 질문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오랑우탄 모자에게, 암수 늑대에게, 치타에게, 코알라에게 내가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듯이

딸아이의 행동에 대해서도 내가 굳이 "왜?"라고 묻고 대답을 들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엄마랑 동물원에 같이 가고 싶다"는 마음 그대로 그냥 받아들여주면 되는 거였다.

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왜"라는 안테나를 세워서 어떻게든 분석해 새로운 행동지침을 작성하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으면 불안해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오차에 대한 "왜'를 분석해 수정된

행동지침을 잘 따르고 있는지 관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후 네 시쯤 해가 짧아져 벌써 어둑해진 쓸쓸한 동물원을 뒤로했다.

오늘 엄마랑 여기 와서 참 좋았어

하는 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왜" 엄마야?

라고 묻고 싶은 나를 어렵지만 꾸욱 누를 수 있었다.



너와 내가 왜 엄마와 딸이 되었는지 이유를 몰라도 이렇게 애틋하게 사랑하듯

오늘 네가 왜 엄마랑 동물원에 오고 싶었는지 몰라도 이렇게 좋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하루.



나는 딸에게서 또 하나의 예쁜 마음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