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다는 말은 나 말고 너 자신에게
성적처리 끝낸 기말고사 시험지 파일을 정리하고 있자니 뭐가 툭 떨어진다.
학생에게 회수한 꼬깃꼬깃한 커닝페이퍼다.
깨알같이 써 놓은 글씨에는 불안한 마음이 촘촘히 박혀있다.
내 눈은 단춧구멍처럼 작지만 아무리 넓은 교실에서라도 커닝하려는 학생들을 민첩하게 감지할 수 있다. 가히 천부적 재능이다.
아니, 실은 커닝하려는 아이들은 늘 비슷한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다.
그 공통점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불안이다.
학교에서는 시험 부정행위에 대해 무척 엄격하다. 시험 전 학생들 지도는 물론, 전교원에게는
시험감독 매뉴얼이 전송되며 거기엔 어떠한 처분이 내려지는지가 무서운 말로 경고되어 있다.
학생들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련만 매 시험 때마다 질세라 커닝하는 용감무쌍한 녀석들이 있다.
멀쩡한 시계줄을 떼어 내고 스마트 워치를 손에 쥐고 커닝하는 녀석, 허벅지 사이에 휴대폰을
끼우고 보는 녀석, 롱스커트 사이에 커닝페이퍼를 살짝 덮어 놓고 보는 녀석, 한 여름에 긴소매
입고 와서 소매 안에 페이퍼 넣어 놓고 보는 녀석..... 방법은 달라도 표정은 늘 같다.
안타깝다. 왜냐하면, 난 학생들의 그 불안한 마음도 민첩하게 감지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좀 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처절함도 눈물겹지만, 이곳엔 제발 낙제만이라도
면하고 싶은 소박한 절실함이 있다.
그렇다. 어떻게 이 뜨거운 청춘을 공부만 할 수 있단 말인가.
한류에 열광 중이라 자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거나, 혹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복습 없이도 수업
내용을 마스터한 학생이 아니면 한 학기 동안 배운 많은 양의 한국어 시험에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렵다.
게다가 난 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 답안지가 거의 백지상태가 되는 문제를 내는 괴팍한 선생이기까지 하다. 물론 그렇다고 부정행위가 용서되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부정행위는 정학, 퇴학까지도 이르는 금지된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난 마음이 약해진다. 그 처절한 학생들의 서툰 몸짓에.....
일단 가여운 청춘이 내 레이다망에 포착되면, 커닝현장을 어떠한 변명과 발악에도 굴하지 않는, 빼도 박도 못할 정교한 테크닉으로 신속과 정확 그리고 조용하게 확보한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새로운 답안지를 가져와 커닝으로 점철된 답안지와 교체한다. 그리고 제출된 답안지는 채점 없이 재시험과 추가시험이 불가능한 F로 채점된다. 그렇게 되면 내년에 나와 재회를 하거나, 운이 좋으면 재수강 전담 호랑이선생님께 또 한 번 수업을 듣게 된다. 교칙대로 학교에 보고를 하고, 학생을 징계위원회에 보내 처벌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걸 악용하는 학생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은 절대 해야 하므로 시험 전에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만약 걸리게 된다면 시험 후 도망치듯 그냥 가지 말고 반드시 남아서 자기반성을 하고 갈 것. "죄송합니다"는 선생에게 하는 게 아니라 너 자신에게 하고 갈 것을.
대부분의 학생은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빈 교실에 남아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았다가 인사를 꾸벅하고 간다. 혹은 쪼르르 강사실까지 찾아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가기도 한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거기에 이렇다 저렇다 훈계를 덧붙이고 싶진 않다. 아직 불안을 다스리는 힘이 부족할 뿐이므로.
누구나 실수나 잘못된 행동을 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행동이 아닐까.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하고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실수와 잘못이 많은 나는 반성을 통해 매일매일 성장 중이다.
(혹시 읽으시는 분들 중, 절 교칙 위반으로 학교에 꼰지르시겠다면 먼저 개인적으로 연락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