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이 필요해
"엄마아....."
뭐 필요한 게 있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나 사용하는 알랑방귀 및 자기 보호용 한국어 호칭을 부르며 새벽에 아들이 내 이불로 기어든다. 이마를 만져보니 미열이 있다.
키도 손도 발도 어느새 나보다 커 버린 중3 아들은 사춘기가 늦게 오려는지 묻는 말에 다정한 말투로 이야기도 해 주고, 대답도 공손하게 하는 편이다.
자기 전에 체한 거 같다며 아빠한테 손과 발을 주물러 달라고 하더니 뭔가 몸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아침에 열을 재 보니 37.4도였다. 눈도 또랑또랑하고 목소리에 힘도 있는 것 같아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냈다. 마침 토요일이라 오전 수업만 해서 혹시 학교에서 몸이 안 좋으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퇴할 수 있으면 하고 오라고 당부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보낸 것은, 학교 가기 싫어서 아침마다 짜증을 부리는 딸이 아들에게 심술부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열이 있는데도 묵묵히 학교에 가는 동생을 보며 그날 아침은 딸아이도 투정 부리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오전 11시쯤 조퇴를 하고 오겠다는 아들의 전화. 역시 보내지 말 걸 그랬나.... 후회가 됐다.
약을 먹이고 아들의 자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어릴 때부터 똘똘하고 눈치 빠른 딸에 비해 모든 것이 느리고 어설펐던 아들이 늘 불안했다. 내 불안도 원인이었을까, 연년생이라 같은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늘 비교를 당해 아들은 자존감이 아주 낮았다.
남편은 내가 아들을 오냐오냐하고 아들 편만 든다고 한다. 그랬나? 아들이 누군가에게 무슨 속상한 말이나 비난을 들어도 묵묵히 참아 내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서 토닥이거나 용기를 주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 부족해 보이는 아들이 늘 안타깝다. 그건 본인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인 걸 알면서도 난 틈만 나면 이걸 어떻게 해 줘야 하나.... 고심 중이다.
한참 자고 일어나서 친구의 라인(LINE)을 확인하던 아들이 한마디 한다.
"엄마, 학교 친구들이 엄마를 도쿠오야(毒親:독친)라는데?"
열이 있는데도 굳이 학교를 보낸 독(毒)한 엄마를 그렇게 정의하는 모양이다.
뭐? 하고 일순 발끈했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안 그래도 뒤처진 수학 수업을 결석해서 더 못 따라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딸아이의 심술이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은 아들 자신이 아니라 엄마인 나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도쿠오야가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혹시 내가 도쿠오야가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순수하게 아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쿠오야로 보이는 것이 싫고 감추고 싶어서인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자기 최면에서 못 깨어나 이미 완성된 인격체로서의 아이를 언제까지나 부족하고 채워나가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는 한, 나는 영원한 독(毒) 엄마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기 최면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지금 여기 이렇게 브런치에 고백하는 동안은 내 최면이 조금 각성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제발 내 마음과 시선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향해지기를....(덤으로 남편에게도)
그리고.....브런치가 독(毒) 엄마에게 있어서 하나의 해독제가 될 수 있기를.....소망해 본다.
*도쿠오야(毒親, Toxic Parents:1989년 수잔 포워드(Susan Forward)에 의해 제창된 정신적 폭력에 의해 아이의 인생에 독처럼 해를 끼치는 부모를 칭하는 표현) - 한국에서는「독친」이라는 한자의 음독으로 알려져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