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다키(追い焚き) 앞에서

어릴 적 일기장이 되지 않기 위해

by 혜준

일본 가정집의 욕조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오이다키*라는 장치가 있다(이미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긴 샤워보다는 욕조에 물을 받아서 온 가족이 순서대로 들어가는 목욕 시스템이다. 지저분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으나, 우리나라 대중목욕탕에서 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깨끗하게 씻고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하면 뭐 그리 뜨악할 일은 없다. 게다가 우리는 가족이니까.

물론 사춘기 여자 아이의 경우는 예외로, 아빠가 들어간 후의 욕조 입수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므로 아빠보다 먼저 목욕을 시키는 것이 가족의 평화를 위해 지켜져야 할 규칙이다. 보통은 집에서 제일 목소리가 큰 사람이 목욕을 하고 차례로 줄줄이 하는 방식이다. 이렇다 보니 긴 시간 욕조의 물을 따뜻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목욕을 하는 사람은 거의 냉수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오이다키가 욕조 안의 물을 순환시켜 가면서 따뜻하게 다시 데워주는 역할을 해 주는 덕분으로 마지막에 목욕을 하는 사람도 뜨끈하게 목욕을 마칠 수가 있다.

따뜻한 온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 온돌이 있다면 일본에는 오이다키가 있다고 해야 하나?



욕조에 들어가 앉아서 멍하니 오이다키 스위치를 바라보니(벽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 한 달쯤 되어 가는 내 브런치 글쓰기가 겹쳐진다. 시작했던 타이밍이 마침 방학인 덕분에 일단 어떤 글이라도 매일 써 보자 했던 혼자만의 약속은 잘 지켰다.

하지만, 써 놓은 걸 다시 읽어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내 글이 내 성격 그대로 인 것 같아 부끄럽고 한심하기만 하다. 조금 힘들고 무겁고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회피하려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두리뭉실 퉁치려는 나의 성격이 그대로 글에서도 느껴진다. 사고와 사유가 철저하지 못하다기보다 나는 불편해질 지점에서 늘 한 발 물러선다. 그리고, 나 자신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철저히 응시하고 표현하려는 힘과 용기가 부족함을 느낀다. 아니, 용기가 없다는 말은 핑계다. 나는 여전히, 좋아 보이는 나로 남고 싶다.



어릴 때 선생님께 제출할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한 달 동안 브런치를 썼던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본다. 부모님의 다툼을 지켜보며 느꼈던 그 깊은 불안마저 칭찬받고 싶은 마음 뒤로 숨겼던 어린 날의 나. 그 비겁함이 마흔 해가 지난 지금, 내 글 속에서 여전히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쓰고 서성이고 있다.

혼자 노트에 쓰고 있던 글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누군가와 공유, 공감하고 싶었으면서, 정작 난 마음을 열어 준 친구에게조차 노트를 꼭 쥐고 펼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실 아직도 난 브런치의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많이 읽지 못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 부끄럽고 열등감이 커져서 글을 쓸 자신감이 없어질까 두려워서이다.



나는 오이다키처럼 내 글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따뜻한 온기를 전달해 주었으면 했다.

오이다키가 한 번 받아 놓은 욕조의 물을 순환시켜 따뜻한 온수로 만들듯이, 참신하고, 기발하고, 자극적이기보다는 조촐하지만 내 안에 담겨 있는 감정과 사유를 순환시켜 따뜻한 문장을 써 가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까지 마치 옷을 벗을 용기도 없으면서 목욕을 하려는 사람처럼, 나와 타자를 직시하려는 용기도 없이 어떤 글쓰기를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오이다키를 운운하며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은, 차가운 나를 들키기 싫다는 말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이게 브런치를 약 한 달 동안 해 온 지금의 나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걸 읽어 줄 누군가에게 고백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글쓰기가 계속 일기장 제출이 될 것 같았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뭘 원하고 있는 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나를 기만하는 글쓰기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오이다키(追い炊き):일본욕조시스템으로 욕조의 식은 물을 재순환방식으로 데워 다시 욕조로 보내는 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