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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화요일부터 시작된 3학기 기말고사 기간이다.
시험지라도 잘 보긴 했는지....
일찍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소화시킨다면서 소파에 드러누워 폰을 들고 한참을 시시덕거리더니,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슬쩍 가방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휴대폰은?"
하니까 가던 길을 돌아와 폰을 탁자에 놓고 무거운 발을 질질 끌면서 가는 뒷모습도 무겁다.
말하지 말 걸 그랬나?
가방 속에는 노트북이 들어 있으니 어차피 장난감은 아직 갖고 있는데....
아니다! 난 딸을 믿는다. 아니다, 믿지 않는다. 아니다, 믿고 싶다. 믿을 것이다.
사실은, 이젠 의심을 하고 확인을 하지 않아도 방 안에서 딸이 공부를 하고 있는지 딴짓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움하하...
거실에서 얌전하고 성실하게 공부하던 초등학생 시절,
식탁에 노트북을 펴 놓고 재미난 동영상을 몰래 보다가도 엄마 기척만 나면 빛의 속도로 화면전환과 동시에 공부하는 척이 가능한 멀티 테스팅의 달인이 된 중2, 중3 시절을 거친 후,
허둥대고 당황하는 쫄보스러운 자신이 용납이 되지 않는 건방진 고1이 되니 공부 무대는 자기 방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거실에서 하자는 엄마 말에 콧방귀를 뀌면서....
고 1 초기에는 책상에 책도 펴 놓고 필통도 꺼내 놓고(필기도구는 절대 나와 있지 않음) 공부했다는 알리바이를 엉성하게 조작하더니
고1 막바지인 지금은 그것조차 하지 않고 침대 위 이불을 동굴로 만들고 있다. 널 믿고 지켜보겠다는 엄마의 마음 비우기 노력의 빈틈을 타서 말이다.
알리바이 조작조차 하지 않아도 아직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방에서 나올 때는 거실을 한 바퀴 빙 돌고 나한테 어리광도 좀 부리고 들어가는 요즘이다. 바로 요요요! 지점이다. 내가 굳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방을 들여다보거나 방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지 않아도 『나는 네가 지금 방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경지에 다다른 이유가....
거실에 나오는 빈도가 엄청 잦다. 그리고 태도가 당당하다. 어깨에 뽕이 엄청 들어간 느낌? 그리고 가족들에게 괜히 시비다. 공부하는 생색을 내고 싶은 걸까? 간식이 끊이질 않는다. 이럴 땐 공부를 조금 하고 있다는 증거.
반대로 방에서 그 좋아하는 『ジョジョ の奇妙な冒険(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도 보고 있는 날은 일단 두문불출, 가끔 나오면 나한테 들러붙어서 실실 웃다가 들어가는 기묘한 행동을 한다.
이렇게 딸의 동태 파악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이후의 대응에 고심하는 요즘이다. 기묘한 행동을 하는 딸아이에게 "이제 슬슬 공부 좀 하지?"라고 나도 실실 웃으면서 얘기했다가는, 당장 얼굴에 찬바람이 쌩쌩 불면서 기묘한 모험에 다시 빠져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두고 보자니 인생의 진짜 모험이 코 앞에 닥쳤다.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피가 말라버릴 것만 같다.
스스로 공부 열심히 하는 자녀를 가지신 부모님들은 절대 맛보지 못할, 이도 저도 못하는 이 쫀쫀한 느낌...(나도 두쫀쿠라는 거 먹어 보고 싶다)
아까 방에 들어가서는 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화장실 가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잠잠한 걸 보니, 동면(冬眠)으로 현실도피를 하시는 중이거나 죠죠와 기묘한 모험을 하고 계시는 중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딸아....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네....
이렇게 공부를 자기 의지로 안 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 혹은 요령과 효율의 개념을 오해하여 자신이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자신의 성적에 천하태평인 자녀를 잘 인도하셔서, 혹은 몸에 사리가 들어갈 정도로 인내하셔서, 자녀분들이 나름 자기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부모님들이 계시면 조언을 받고 싶다. 물론 본인이 우리 딸 같은 기묘한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드시고 잘 사시는 작가님들이 계시면 더더욱 조언을 듣고 싶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이 못난 어미를 가여히 여기신다면 자비의 손을 내밀어 주소서. 그리고 저도 언젠가 그 조언과 증언을 다음 세대에도 전파하겠나니....
⁂두쫀쿠는 일본에서 올해 1월 뉴스에도 등장해 소개된 것 같은데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볼 수가 없네요. 신오쿠보(新大久保:신주쿠에서 가까운 한인타운)에 가 봐야 할 듯. 쫀득함을 "쫀쫀"하게 표현해 봤습니다.
⁂사진 출처:1014px-LS_ArtBanner.jpeg (1014 ×338)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대해서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 - 나무위키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