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추억 영화제

오전 10시, 집안일을 미뤄두고 떠나는 시간여행

by 혜준

걸어서 3분이면 도착하는 영화관에 대해서는 전에도 쓴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밤 상영도 하지만 오전에는 「오전 10시 영화제」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1100엔이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클래식 명작을 볼 수가 있다. 물론 오래된 영화들이라 DVD(올드하죠?)도 있고 넷플릭스로 볼 수도 있지만 역시 영화는 스크린과 사운드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아이들 학교 보내 놓고 집안일을 미뤄 놓고 탈출하듯 혼자 영화 보러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처 다 개지 못한 빨래 더미가 눈에 밟히지만, 영화관에 들어가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잠시 스틸 사진처럼 멈춘다.


특히 올해의 「오전 10시 영화제」는 15주년을 기념해, 지난 14년간 상영된 316편의 작품 중에서 관객들의 투표로 "한번 더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한 이벤트였다(총 투표수 71,742표). 엄선된 25편의 영화는 2024년 4월 4일부터 2025년 3월 26일까지 스케줄에 맞춰 상영되고 있다. 영화감상도 감상이지만, 선정된 영화를 보면서 일본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라서 흥미롭다. 그래서 시간이 허용되면 만사를 제치고 간다.


역시 명작은 국경과 민족과 인종, 성별을 뛰어넘는 감동이 있으니, 우리나라의 선호도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엄선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영화가 몇 편이나 있는지 찾아보시고, 만약 아직 안 본 작품이 있다면 꼭 보시길 바란다.



장대한 스케일 이것이 영화다! 벤허(1959년, 미국) / 아라비아 로렌스(1962년, 영국)

신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팔갑산(八甲田山, 1977년, 일본)/터미네이터 2(1991년, 미국)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 미국) / 대부(1972년, 미국)

진짜 범인은? 그 수법은? 모래그릇(砂の器, 1974년, 일본 /양들의 침묵(1991년, 미국)

행복은 노래와 함께 메리 포핀스(1964년, 미국) / 시스터 액트(1992년, 미국)

리들리와 토니, 스콧트 형제감독작 에일리언(1979년, 미국) / 탑건(1986년, 미국)

짧은 만남, 영원한 추억 E.T.(1982년, 미국) / 로마의 휴일(1953년, 미국)

세계에 자랑스러운 일본 대표작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1954년, 일본)

음악이 자아내는 애증의 드라마 웨스트사이드 스토리(1961년, 미국)/아마데우스(1984년, 미국)

당신을 잊지 않아요 시네마천국(1988년, 이탈리아・프랑스) / 가위손(1990년, 미국)

스티븐 킹원작『공포의 4계절』에서 쇼생크탈출(1994년, 미국) / 스탠바이 미(1986년, 미국)

큐브릭이 보여준 미래 시계태엽오렌지(1971년, 영국) /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1968년, 미국)

예측불능 액션무비 펄프픽션(1994년, 미국) / 레옹(1994년, 프랑스・미국)



이렇게 정리된 목록을 보고 있자니, 서울에서 이 영화들을 처음 봤던 나의 나이와 같이 본 사람, 그리고 장소까지 하나씩 떠오른다. 북적대는 종로의 영화관에서 함께 숨죽이며 보던 그들은 지금 다들 어디서 어떤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다들 잘 지내고 있나요....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아마데우스이다. 이유를 들라고 하면 하루 종일 떠들어도 모자랄 정도이다. 무엇보다 천재를 시기하는 살리에리의 묘사는 감추고 싶은 나 자신과 겹쳐져 보는 동안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내가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좋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아직 못 보신 분들께는 꼭 권하고 싶다. 특히 클래식 음악에 왠지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시는 분은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꼭 보시길!!


위의 리스트 외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과 한국의 선호도가 높은 영화가 뭘까 궁금해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한국: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대부, 시네마 천국, 쇼생크 탈출

일본:로마의 휴일, 태양은 가득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철도원(1956년, 이탈리아)


조사표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대체로 한국은 "카타르시스형"으로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오거나, 주인공이 고난 끝에 승리하는 명쾌한 서사를 선호한다고 하고,

일본은 "여운중심형"으로 결말이 조금은 쓸쓸하더라도 그 과정의 아름다움(미학)을 중요시한다고 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나 아름다운 이별을 선호한다고 한다.


오늘 보고 온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감독의 『펄프 픽션』(1994년)이었다. 거의 30여 년 전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과거스럽지 않았다. 1994년 당시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의 댄스만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보고 나서 이게 뭐지..... 하고 머릿속에 물음표를 한가득 넣어서 나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볍고(경박하다는 뜻이 아님) 이렇게 재치 있으면서 이런 구성과 의미가 담겨 있는 기발한 영화였다니....

지나간 내 세월 덕분에, 그리고 이제까지 본 영화 수만큼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성숙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예전에 본 영화에서 지나쳤거나 몰랐던 면들을 지금 다시 새롭게 느끼고 알게 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일본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현재보다 과거의 작품을 추천해 보고 싶다. 특히 해외에서 더 유명한 오즈 야스지로감독의 작품은 호불호가 나뉘긴 하지만, 나는 그 정적이고 단순함 속에 깃든 깊은 인생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그 느낌이 좋다. 오즈 야스지로감독과 대비되는 듯한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은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할 것(난 별로...ㅎㅎ)이고 이번에 『국보(国宝)』라는 영화를 대히트시킨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감독의 이전 작품도 추천해 드리고 싶다(『훌라 걸스』『악인』『분노』등). 일본영화의 침체기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 준 이상일감독의 『국보』도 상영시간이 좀 길긴 하지만 정말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은 명작이다. 아직 상영 중이라면 대형 스크린의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보시길 적극 추천드린다.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한 차와 함께 도란도란 영화이야기나 책이야기를 같이 나눌 친구가 무척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