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밑에서 시작해 마음 밑으로 흐르는 면역요법
드디어 꽃가루의 시기가 왔다.
코가 막혔나 싶었는데 그 사이로 콧물이 줄줄 흐르고, 콧물과 함께 재채기가 이어진다.
코와 귀와 눈은 이어져 있다고 했던가(아! 입이다).
이어져 있지 않은 눈도 질세라 간질간질하고 눈물이 흐르고 난 자리엔 눈곱까지 낀다.
아무튼 참 얼굴 들기 민망한 시기이다.
일본에서는 "국민병"이라고도 불릴 정도인 "꽃가루 알레르기" 덕분에 여긴 코로나 이전부터 마스크 착용은 특별하지도 않았다. 유별나다고 생각했던 일본인들의 마스크 착용은 몇 년 후, 나 역시 꽃가루에게 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필수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꽃가루는 1년 내내 날리지만 일본의 봄은 특히 혹독하다.
2월 초부터 4월까지는 삼나무(杉, 스기),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는 편백나무(檜, 히노키)가 극성이다.
우리 집에도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이 심각한 분이 계신다. 아들이다.
어릴 땐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못 뜰 정도로 눈곱이 가득 껴서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꽃가루를 "침입자"로 오해해 공격하면서 생긴다고 한다.
아들은 지금 “설하면역요법(舌下免疫療法)"이라고 해서 꽃가루 추출물을 함유한 알약을 혀 밑에 녹여서 조금씩 몸에 적응시키는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치료법은 "침입자"로 오해받는 꽃가루를 매일 조금씩 몸 안으로 정중히 모셔 들여, 그간의 오명을 풀고 몸과 꽃가루가 화해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과정인 셈이다.
나는 매일 아침 화해를 기원하며 아들의 혀 밑으로 그 작고 무해한 "침입자"를 안내한다.
최소 3~5년 정도 꾸준히 매일 복용해야 하는데, 아들은 벌써 3년째 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병원도 정기적으로 가야 해서 많이 귀찮기는 하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다.
문득 이 과정이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느끼는 스트레스, 불안과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도 어쩌면 내 마음과 생각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삼나무의 꽃가루는 그냥 꽃가루인데, 우리의 몸이 꽃가루를 "침입자"로 오해해서 눈물, 콧물, 눈곱, 재채기라는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것처럼
삶의 여러 일상들은 그냥 일상인데, 나의 마음과 생각이 그 일상을 멋대로 "침입자"로 오해해서 스트레스, 불안, 아픔이라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들이 "설하면역요법"으로 "꽃가루"를 정면으로 받아들여 완치를 목표로 하듯이
나도 "심하(心下) 면역요법"으로 "일상"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고통에 몸부림치게 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화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이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일 꽃가루를 받아들여 완치에 다가가듯,
나 또한 내게 찾아오는 매일의 일상을 마음 밑바닥에 조용히 안내해 볼까 한다.
혀 밑의 약이 알레르기를 다스리듯,
마음 밑에 담아 두는 인내와 수용의 일상이 삶에 대한 알레르기를 치료해 주길 바라면서.
어쩌면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눈물과 콧물이 가라앉은 상쾌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듯
부정적 감정에 흔들림 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건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경지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내일 아침에도 아들의 입속으로 작은 "꽃가루"를 안내하는 나의 일상을 반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