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그리고 내 딸들에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부모님에 대한 삐뚠 마음이 있었을 때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부모님의 말과 행동이 모두 "사랑"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그 표현법이 서툴렀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나는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늙어가고 나도 딸을 둘이나 키우는 30대 후반이 되었다. 다 지난 일이니까 아무렇게나 덮어두며 살았다.
그런데 가끔씩 내려가는 친정집에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날도 두 딸들에게 쓰는 나의 말투가 또렷하게 들렸다. 내가 내 입으로 내뱉는 말인데 마치 다른 누군가가 들려주는 것처럼 귀에 꽂혔다.
사랑이 가득한 말투
다정한 얼굴
상냥한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나
반면 엄마에게는 무뚝뚝한 딸로 변신한다.
내 딸들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에 셀 수 없이 많이 하지만
엄마에게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 집을 떠나기 전,
그러니까 10년 전에 결혼을 앞두고 엄마와 나눈 차가운 대화가 그 속에 남아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딸을 멀리 시집보낼 생각에 걱정되는 마음,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나에게는 뾰족한 가시처럼 박혀서 아팠던 그때.
나 역시 꿈에 그리던 독립이지만 한편으로는 남편 하나 믿고 연고 없는 곳에서 살 생각을 하니 불안했다. 그때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 차가운 온도의 언어를 주고받았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엄마와 부산 여행을 다녀온 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긴 했지만... 그때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었나 보다.
사위와 딸보다 손녀들 보느라 잠깐 말할 틈도 없다가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엄마와 나는 나란히 누워봤다.
"우리 딸~ 안아보자." 하고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시는데 엄마품은 여전히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이렇게나 따뜻한 우리 엄마인데
왜 나는 예쁘게 말하지 못할까, 엄마가 사랑의 마음으로 내뱉은 말인 것도 아는데
왜 나는 아직도 엄마를 불편해하고 있는 걸까..."
며칠 뒤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사랑해요"라는 말이 목에 탁! 하고 걸리고 말았다.
나는 언제 내가 내 딸들에게 밥먹듯이 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엄마에게 말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이 목에 걸려서 아프다. 그럼 지금 당장 전화를 걸고 내뱉으면 될 거를..
따뜻한 차 한잔을 들이키며 꾹꾹 삼켰다.
내 딸은 나에게 사랑 표현을 진~하게 잘해준다. 나도 어렸을 때 내 딸처럼 그랬겠지? 그런데 언제부터 지금의 나처럼 되는 걸까. 지금은 과할 정도로 딸아이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 사랑이 언젠가는 내가 엄마에게 대하는 것처럼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허전해졌다. 엄마는 지금의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이실까?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수십 번 말할 때 엄마에게 할 생각은 왜 못한 걸까?
이 차를 다 마시면 "엄마 사랑해"라고 메시지라도 남겨야겠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겠지.
공간은 같지만 시간이 달라진 친정집에도 언어의 온도를 높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