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의 입시제도 개혁과 정순신 낙마
문재인 인사 파햄과 닮은 꼴 인사 난맥 드러나
덩샤오핑이 1977년 정계복귀 후 단행한 첫 개혁은 입시제도였습니다.
덩샤오핑은 “진정한 재능과 실학으로 무장된 사람이어야 한다. 허황된 이론이나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혁명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끝마다 혁명이니 뭐니 해대며 되지도 않을 연합 타령이나 하는 사람들이 참석할 자리가 아니다. 식견이 풍부하고 할 말을 과감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엄선해라. 4인방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던 사람들은 배제시켜라”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과학 및 교육 공작 좌담회'를 개최해 지난 정권에서 핍박받던 지식인들을 초청했습니다.
마오쩌뚱의 홍위병과 4인방에 의해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이들이 쉽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어려웠지만 덩이 매일 현장에서 '들을 자세'를 실천하자 그동안 머릿속에만 감춰덨던 개혁안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인재 양성의 핵심인 대입제도가 도마에 올랐죠.
당시 중공의 대입제도는 '추천제'였습니다.
이른바 공농병이라는 전대미문의 입시제가 대학을 오염시켰습니다.
공농병(工農兵)대학은 중졸 이상의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상이 양호하고 신체가 건장한 20세 전후의 노동자·농민·군인이라면 소속 혁명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신입생을 선발하는 무늬만 대학이었죠. 심지어 중공 최고 베이징대도, 칭화대가 그렇게 신입생을 선발했습니다.
권력의 개가 된 공농병 대학생들은 학교를 장악하고, 마오쩌둥 사상을 통한 대학의 개조를 주임무로 삼았다 하니 공부는 뒷전이었겠죠. 지금 21세기 시황제를 자처하는 시진핑도 공농병제로 칭화대에 입학했습니다.
덩은 이런 국가 적폐를 철폐하기 위해서 1977년 겨울 대입시험을 전격 시행 했습니다. 이것이 중공 개혁개방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문재인 전 정귄의 '캠코더'인사로 인사정책체계는 사실상 붕괴됐었죠.
문통과 그 추종세력에 의한 국가 인사권 전횡은 중공을 망친 홍위변 천하와 4인방 독재를 방불케 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 부동산 대란의 주역인 김현미 임명, 좌파 사회주의적 실험적 경제 정책을 남발했던 김상조 등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의 인사정책도 국민의 심판을 받아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그런데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 학폭논란으로 국수본부장을 불과 내정 하룻만에 사퇴했습니다.
윤 정부 인사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현실입니다.
국민의힘은 야당시절 그토록 문 정권의 인사 파행을 비난했지만 지금도 별 반 차이 없습니다.
도대체 정권교체는 왜 한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