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거사의 地스토리]신의 한수 2개 전선 전략과 북한
대만 침공시 예상 되는 대남 도발 대비 전략 부재 우려
연개소문은 대전략가다. 그는 두개의 전선 전략으로 침략자 당의 야욕을 꺾었다. 그는 대륙 북방 초원 강국 동돌궐과의 동맹을 통해 두개의 전선을 구축해 고구려를 지켰다.
당 태종이 침략하자 동맹국 동돌궐과의 긴밀한 협조로 후방 교란을 기획해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동동궐은 고구려 전선에 당의 정예군이 투입된 빈틈을 노려 당의 수도 장안을 위협했고, 당군은 곧바로 고구려 전선에서 철군을 강요 받았다.
흔히들 고구려 혼자의 힘으로 당의 침략을 물리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면에는 연개소문의 탁월한 두개 전선 전략이 있었다.
신라 문무왕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전략을 구사했다. 당이 나당 연합의 최초 약속을 어기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자마자 신라마저 복속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에 문무왕은 당과의 결전을 앞두고 토번을 주목했다. 당이 주력군을 투입하면 지연전으로, 토번이 당을 침입해 주력군이 빠지면 전면전을 펼쳤다. 실제로 삼한통일의 결정적 전투인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는 토번과의 전쟁으로 당군은 말갈, 거란 등 혼성군 형태로 최상의 전력이 아니었다. 문무왕이 동북아 정세를 정확히 꿰뚫어 적시적절한 전략을 구사한 덕분에 한반도 소국 신라가 삼한통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2개 전선은 천조국 미국도 꺼려한다. 시진핑이 대만 침공시 김정은이 도발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미 조부 김일성이 구사했던 수법이다. 김일성은 1960년대 비엣남 전쟁 당시 1.21 청와대 기습과 이틀 후 푸에블로호 피랍, 삼척-울진 무장공비 침투 등 미군의 전력 분산을 위해 잇달아 도발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미국은 비엣남과 한반도에서 두개의 전선을 진행할 여력이 없었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피랍 때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미 해군 역사상 외국군에게 미군의 군함이 피랍당한 첫번째 수모였지만 쉽사리 반격에 나설 수 없었다. 게다가 북비엣남군이 구정공세를 펼치며 북한을 측면 지원했다. 아니 두 공산군은 미군을 갖고 놀았다. 결국 미국은 굴욕적인 사과로 자국 군함 피랍 사건을 급마무리했다.
미국의 수모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푸에블로호는 아직도 나포 상태에 있는 유일한 미 해군 함정으로, 대동강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사건은 초강대국 미국이 북한의 두개 전선 전략에 참패 당한 대표적 수모다.
김일성 못지 않은 잔인한 독재자 김정은이 이 교훈을 잊을 리가 없다. 시진핑이 대만 침공 위기를 고조시킬수록 북핵위기도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불행히도 우리 역사에는 연개소문과 문무왕 이후로 두개 전선 전략을 구사한 한민족 군주가 없었다는 데 있다. 중국 왕조의 후방을 교란할 북방민족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한반도에만 갇힌 폐쇄적 사고의 포로가 된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무사안일 저자세 사대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물론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외교 개척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을 고립시켰던 시기가 잠시 있었지만, 전략적 사고 부재 세력들이 잇따라 집권한 탓에 '높은 봉우리 중국'만 바라보고, "쎄쎄"만 외치면 되는 줄 아는 형국이니 안타깝다.
또한 북한 후방을 교란할 북방의 우호국을 만들지 못한데다 전략적 사고도 부재하니 한숨만 나온다. 연개소문과 문무왕의 두개 전선 전략 부활을 언제까지 역사책에서만 볼 수 있을지 가슴이 에린 가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