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불효자다. 백성보다 자식을 더 사랑한 아비 선조의 뜻을 거스르고 형제 임해군을 죽게 만들었다.
《선조실록》선조 36년 8월 6일 기사에 나온 사신의 평을 보자.
"임진년의 변란 때에 시민(市民)으로서 창을 거꾸로 들이댄 자까지 있었고, 임진년 이후에는 반역하는 백성이 잇따라 일어났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왕자·제궁들이 민전(民田)을 빼앗아 차지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으므로 소민(小民)이 생업을 잃고 불평하여 배반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임해군(臨海君)·순화군이 북지(北地)의 백성들에게 묶여서 적에게 보내졌으니, 극도로 사무친 원망이 아니면 어찌 이렇게 하였겠는가. 이것을 징계하지 않으므로 난리가 겨우 진정되자 침탈이 그치지 않고, 침탈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초개처럼 죽이기도 하였다. 임해군·정원군(定遠君)·순화군의 궁가(宮家)로 나라 안의 함정을 만들어 백성이 이 나라가 어느 때에나 망할까 하는 원망을 갖게 하였으면서도 한번이라도 감히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토록 엄하게 꾸짖을 뿐, 자식을 의로운 방도로 사랑하는 교훈을 따른 적이 없었다. 이는 여러 왕자를 놓아 반적(叛賊)을 위하여 백성을 몰아주는 것이니, 참으로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길게 탄식할 일이라 하겠다."
조선 최초 외환 우두머리 선조는 말 그대로 백성보다 자식을, 특히 민심 공인 패륜아들을 감싸는데 급급했다.
《선조실록》 선조 40년 3월 18일 기사에 나온 손화군의 졸기를 보면 선조가 얼마나 나쁜 군주였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보(순화군)는 왕자다. 성질이 패망(悖妄)하여 술만 마시면서 행패를 부렸으며 남의 재산을 빼앗았다. 비록 임해군(臨海君)이나 정원군(定遠君)의 행패보다는 덜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 해마다 10여 명에 이르렀으므로 도성의 백성들이 몹시 두려워 호환(虎患)을 피하듯이 하였다."
살인·강간·재산 탈취 등 온갖 추접한 범죄를 저지른 순화군보다 더하다는 평가를 받은 정원군을 주목하자. 이 인간은 천하의 개망나니 순화군보다 더 악한이자 2대 외환우두머리 인조의 아비다. 백화점식 범죄를 저지르고도 부친 선조의 비호로 처벌을 받지 않았으나 아들 능창대군이 역모사건으로 죽자 술로 지새디가 홧병으로 죽었다.
문제는 이런 反도덕적 패륜아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는 더러운 역사다. 인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자신의 권좌를 지키는데 급급해 수십만명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 가도 귀인 조씨의 치맛폭에 빠져 음란을 즐겼다. 훗날 귀인 조씨와 더불어 아들 소현세자 독살 의혹의 중심에 섰고, 며느리 강빈과 손주들을 죽인 패륜아다.
권력 앞에서 피붙이도 죽인 인조의 패륜은 아비 정원군이 뿌린 씨앗에서 잉태된 듯하다. 배운 게 反도덕적 패륜이니 그대로 실천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게 다 그래도 성은이 망극하다고 세뇌당한 조선 백성의 숙명인 걸 누굴 탓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