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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제국 빌헬름 2세는 외교백치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독일민족을 이끌고 反프 포퓰리즘 외교와 무리한 전쟁으로 조국과 자신을 폐허로 만들었다. 사실
독일인은 똑똑하다. 그것도 아주 똑똑하다. 세계를 상대로 두차레의 큰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무모했지만 불사조처럼 부활해 세계 4대 경제 대국이 됐다.
역사를 보면 독일은 지정학 피해자다. 우리는 지난 100여 년의 짧은 기억으로 독일을 가해자로 인식하지만, 실은 피해자였다. 육지로는 프랑스와 러시아가 양쪽에서 포위한 형세고. 바다는 세계 최강 영국에 의해 봉쇄됐다.
도발은 프랑스가 먼저 했다. 17세기 통일 독일을 두려워한 프랑스가 분열책을 써서 30년전쟁을 기획해 독일은 내전의 늪에 빠져 200여 년간 유럽의 호구로 착취 당했다. 러시아도 독일 통일을 극도로 혐오했다. 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해선 서부전선이 무탈했어야 했다.
19세기가 되자 불세출의 영웅 비스마르크가 나타나 산업혁명과 군현대화로 숙적 프랑스를 굴복시켜 통일 위업을 이뤘다. 당시 세계 최초로 철도를 이용한 병력 수송은 프랑스의 몰락을 촉진시킨 군사 천재 몰트게의 역작이었다.
마침 영국이 엉예로운 고립 외교로 오만방자한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를 견제하고 보불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아서 가능했던 행운도 따랐다. 러시아도 구제도의 모순으로 농노의 계급 갈등으로 국내 정세가 복잡해 독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빌혤름 2세 즉위 후
비스마르크가 실각 되자 독일이 분수를 모르고 설치기 시작했다. 흔히들 비스마르크를철혈재상으로 알고 있지만 보불전쟁 이후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현란한 외교술을 구사해 현상 유지를 통한 유럽의 조정자로 군림했다. 비스마르크는 입으로 떠드는 평화 대신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외교 백치 철부지 빌헬름 2세는 노회한 권력자 비스마르크를 내쫒고 팽창 정핵을 선택했다. 국제 정세에 무지한 외교백치다운 선택이었다.
수백년간 외세에 시달린 독일민중은 외교백치의 호탕한 포퓰리즘 反프 자주외교에 환호했고, 묻지마 지지를 보냈다.
이에 영국은 독일의 팽창을 경계하며 다시 포위전략을 선택했다. 숙적 프랑스와 러시아를 끌어 들여 삼국협상을 완성했다. 러시아는 크림 전쟁 패전 앙금이 진하게 남았는데도 독일 팽창이 가져올 위협을 제거하고자 적대국 영프와 손잡았다.
독일도 이에 맞서 삼국동맹을 맺었지만 삼국협상과 두개의 전선을 감당해야 했지만 외교 백치 빌헬름 2세는 보불전쟁의 영광에 도취해 이를 무시했고, 反프 포퓰리즘에 가스라이팅 당한 민중은 묻지마 지지를 잊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초반에는 독일이 우위를 점하는 듯했으나 프랑스 페탱 원수가 독일군 전진을 봉쇄했고, 러시아는 패전을 거듭했지만 그런대로 잘 버텨줬다. 문제는 세계 최갑 영국 해군이 바다를 봉쇄해 해외식민지와의 물자공급을 완전 차단한 데 있었다 여기서 외교백치 빌헬름 2세는 결정적인 패착을 둔다. 세계 최대 공업국으르 급부상한 미국을 적으로 돌리는 무재한잠수함 작전을 실시했다. 원래 미국은 먼로선언으로 유럽 불간섭 외교로 양측에 전쟁물자와 차관을 제공하며 천문학적인 전ㄷ쟁특수를 누리고 있었는데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작전으로 쟈국민의 피해가 급증하자 참전했다. 이때 맥아더라는 걸출한 전쟁영웅이 무지개사단으로 교착상태의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겨 독일 패전을 이끌었다.
무능한 외교백치 빌헬름2세 덕분에 독일은 19세기말 유럽을 주도하던 영광을 뒤로 한 채 유럽의 노예로 전락했다. 연합국의 살인적인 배상금 부과로 하이퍼플레이션을 감내해야 했고,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히틀러를 초대하게 된다.
외교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현란한 설교(舌交)는 나라를 망치는독설(毒舌)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독일인을 노예로 전락시킨 외교백치 빌헬름 2세는 독일인의 황제가 아닌 역사의 대역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