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친위대 중령이었다. 그는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의 최종 책임자였다. 그러나 패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해 신분을 숨기며 살다가,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되어 1961년 예루살렘에서 공개재판을 받는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죄명으로 법정에 선 그는,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항변했다. “나는 한 사람의 유대인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고, 부하들에게도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유대인들을 강제로 수송, 이주시키라는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나는 그 당시 보편적 기준에 충실했을 뿐이다.” (이 글을 읽다가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친일파들도 그 당시 보편적 기준에 따른 것이었을까? 또 한국전쟁 때 자기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된 남과 북의 많은 양민들이 오버랩되었다)
그날 아이히만은 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아버지며 전직 군인처럼 말하고 행동했다고 한다. 그런 그를 재판 내내 8개월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독일 태생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가 그녀다.
아이히만이 교수형 되고 나서 한나 아렌트는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해 언급한다.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명령이라도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죄를 지은 것과 같다. 그의 죄는 ‘사유의 불능성’에 있다. 즉 사유하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악이고 죄다.”라고.
매스컴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보도되고 가해자의 얼굴이 공개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에는 뿔이 달려있지도 피부색도 다르지 않으며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는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짓을 저지는 데는, 그 행위를 하기 전에 ‘사유의 불능성’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나 아렌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하삼두 화백으로부터 “사유하지 않는 것은 죄다.”라는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했다. 사유하지 않고 사는 삶은 죄를 지고 있는 것이고, 그건 먹고 자고 배설하는 그저 살아내기만 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자 씁쓸하기까지 했다. 하 화백은 말은 이었다. “돈도 안 되는, 어떤 면에서는 지루하기도 한, 인문학 공부를 여러분은 왜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스스로를 뒤돌아볼 일이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 귀가 길, 차 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생각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는지?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었던가.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게 전부였다.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질문이다. 이 물음에 밝힐 위대한 계시는 (내 삶에 있어) 단 한 번도 없었다>
맞다. 철들고부터 그놈의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이 나이 먹도록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세월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고, 위대한 계시는 내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으니,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걸까?)
며칠 전 남산 소나무 숲 사이에 피어있는 백일홍 무리가 빛 내림을 받고 있었다. 평사 시엔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려 카메라를 드려 댔어야 했는데 조금 귀찮고 게으른 마음에 ‘나중’을 기약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 뒤에 이 말을 전해 들은 동료 작가가 혀를 차며 내게 말했다. “‘나중’은 사전에나 있는 말이야. 찍어야 할 때 찍어야지... 어쩌면 그런 장면을 평생 못 볼 수도 있어...”
인생이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사유하지 못하고, 때를 만나도 반응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타협하다가 세월만 보내는 죄와 허상. 그때 불현듯 생각이 난 말 한마디. (생각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행동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