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선택으로 시작된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게 누가 물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가 답했다. <인생은 B와 D사이에서 C다>, Birth와 Death 사이에 Choice. 즉, <인생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이다>라는 말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만나는 것들 중, 뭔가 하나는 계속 결정하며 산다.
그는 핸드폰 자명종 소리에 하루를 연다. 새벽 5시 정각이다. 주방에서 냉장고 문을 열면서 고르기가 시작된다. 주스, 중국 보이차, 아니면 그냥 냉수 한 컵. 그리고는 발걸음 소리를 최대한 낮추면서 헬스 백 속에 운동 후 입을 언더웨어와 출근복을 옷장에서 꺼내 챙긴다.
상의와 하의 그리고 구두의 색을 맞춘다. 귀찮아도 그렇게 조화로운 차림새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하고자 노력한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 걸치는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게, 추하게 않게 사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그는 생각한다.
운동 후 마실 두 개의 보온 텀블러에 담을 커피도 컨디션에 따라 골라야 한다. 전날 원두를 갈아서 내려놓은 커피냐, 아니면 간편한 카누나 루카스 나인이냐. 전날 그라인더의 수고로움이 귀찮게 기억되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인스턴트 봉지를 뜯는다. 선택은 이런 순간에도 잊히지 않고 다가온다.
헬스장에서 제일 먼저 하는 러닝머신 위에서 걷기도 여러 대 중에서 골라야 한다. 잡담하길 즐기는 사람들 근처는 피한다. 그렇게 5Km를 걷고 벤치프레스, 팩 덱 플라이, 물구나무서기, 벨트마사지, 진동운동... 7시 50분까지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이 운동을 다 할 수는 없다. 이때는 선택보다 빈 기구를 찾아야 할 경우가 많다.
운동 후 흠뻑 젖은 몸을 씻기 위해 어느 샤워기를 사용하느냐는 것도 결국은 선택이다. 컨디션이 좋으면 서서, 그렇지 않으면 목욕탕 의자에 앉아, 샴푸와 면도와 비누질을 한다.
차의 시동을 걸고 출근 가방에 손만 넣어 집에서 준비한 텀블러 한 개를 꺼낸다. 흰색은 ‘행운의 하루’를, 미색은 ‘미풍 같은 하루’를,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거다. 하지만 어디에 담겼든 커피는, 커피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된다. 생명수 같은 블랙커피 한 모금에 심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일방적으로 작명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 출근한다.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오늘 사용할 펜을 고른다. 옐로 펜슬, 샤프, 제트스트림 펜들 중에서. 좀 우중충한 날에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좋아하는 슈퍼 로택스 만년필을 꺼낸다.
시계를 본다. 이제 8시다. 새벽 5시에 기상해 겨우 3시간이 지났건만 선택해야 할 일이 이다지도 많다. 대충 크게 잡아도 10여 개가 넘는다. 종일 회사에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귀가해 저녁 메뉴, 술 한 잔, 영화, 책, 유튜브 등등 잠들기 전까지 따지면 일부러 세려 보지 않았지만 백여 가지의 선택을 하지 않을까, 그는 생각한다.
이렇게 선택된 생각들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들은 일상으로 표현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에게 요즘 선택은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만 머문다. 이런 일상적인 선택은 잘못 선택했더라도 스크래치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습관적이 아니라, 간혹 신중하게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놓치게 되는 경우. 그럴 때 지혜를 빌어보고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 보지만, 여의치 않을 때 상처가 깊어진다. 그래서 그는 일상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한다. 만남과 헤어짐으로 야기되는 피폐함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다. 알을 깨고 나오길 겁먹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방학에도 먼 서울에서 알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들과의 만남은 여의치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없어 알을 깨지 못하는 있는 그와는 달리,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낯선 곳에의 아들은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아들을 생각하면 그의 마음은 먹먹하기만 한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있는 아들이, 먼 훗날 아니 십 년쯤 지나 지금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들에 대해 후회하고, 상처받고, 피폐해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는 그 외로울 아들에게 카톡을 통해 몇 문장을 보내 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이 말에 이어 샤르트르의 말도 <인생은 B와 D사이에서 C다>.
홀로 핀 꽃이 외롭다고 볼 것만은 아니다. 무소의 뿔처럼 당당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