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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Oct 04. 2022

어쿠스틱 기타와 어색한 조우

산전수전 공중전 까지...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기타라고 부르는 악기는 클래식 기타를 말하는 거다. 울림통을 이용해서 소리를 증폭시키는, 흔히 보는 통기타의 정확한 명칭은 어쿠스틱 기타다. 전기 전자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진 기타는 일렉트릭 기타라고 한다.


어제 책을 찾으러 올라 간 서재에서, 카메라 때문에 나에게 버림(?) 받고 있는 두 개의 어쿠스틱 기타와 조우했다. 책장 구석에 덩그러니 커버를 뒤집어쓰고 있는 기타와 오랜만에 조우하자 어색했다. 심지어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한 때는 주말 내내 나와 함께 했던 기타다.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주하면서 애창곡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를 홀로 부를 때 만감이 교차하곤 했다. 내 나이 스무 살 때쯤 알게 된 이 처량한 노래는 지금도 내 십팔번(요즘 이런 말 쓰면 안 되지...)이다. 홀로 청승을 떨 땐 그럭저럭 부르고 들을 만 하지만, 노래방 같은 곳에서는 분위기를 정말 깨는 노래다.


그래도 수 십 년 나와 함께한 노래다 보니 여러 사연이 묻어 있다. 고려대 앞 종암동 같은 곳에서 막걸리 집 뽀얀 담배연기 속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불렀을 때 내 나이 이십 대였다.


취재차 당시 핫 플레이스였던 백마에 갔다가 인터뷰하던 사람과 코드가 맞아 밤새 막걸리를 마시면서 삶과 사랑과 실연... 등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술의 힘을 빌려 낯선 이들 앞에서 목 놓아 부르던 노래도 <상아~>였다. 그때 나는 삼십 대였다.


평창의 눈 쌓인 효석 생가 인근을 홀로 거닐며 마치 흰 메밀꽃밭을 걷듯 조심스러워하면서 나지막이 부르던 노래가 그 노래였다. ‘가버린 꿈속에 상처만 애달파라’라는 대목에서는 고장 난 레코드 판처럼 계속 되먹임만 하면서 눈물 글썽이던 그때, 나는 갓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십을 넘기고 이 노래를 밖에서 부른 기억이 얇다. 술 마시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놀 체력도 바닥이 난 지 오래다. 설사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어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듣지 않기 위해 리듬이 빠른 노래로 대충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집에서 간혹 불렀다. 무슨 가슴 아린 사연이라도 있다는 듯이.


잠시 서재에 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다가 내가 손수 선곡한 기타 악보집이 눈에 띄어 꺼내 보니 노래들이 다 처지는 것들이었다. <청춘> <촛불> <그림자> <All for the of a girl>...


내친김에 기타 한 개의 커버를 벗겨 봤다. 내 생애 첫 기타는 세고비아 제품이었는데, 지금 이 기타의 제작사는 콜트다. 왼손으로 살며시 지판의 줄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튕겨본다. 여섯 줄의 소리가 낯설지 않다. 바레 코드인 F코드를 짚고 성가 <내 주를 가까이>의 첫 소절을 불러 본다. ‘내 주를 가까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수록 다음 코드가 가물거린다.


기타를 내려놓고 생각해 본다. (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보낼 기회가, 아니 그 열정의 시간이 내게 다시 올까?) 그러나 도리질이 절로 났다. ‘비운만큼 채워진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니 기타를 멀리하면서 그 자리를 카메라가 밀고 들어온 게...


어제 한 가지 일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임기 2년의 성당 교육위원장을 맡아 연임하면서 4년을 봉사랍시고 했는데 그 직책을, 교중미사 때 교우들 앞에서 인사하는 것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비움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고 나는 그 공간을 채울 준비를 했다.


‘카누 다크 로스트 아메리카노’ 커피 스틱 봉지를 몇 개 챙겨 집을 나섰다. 종일 이것으로 시장기를 때울 생각이다. 새벽 다섯 시로 시작한 오늘 하루가 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잘 견뎌 낼 거다. <낯설다는 것은 새롭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시간을 믿는다. 이런 것 말고도... 여태껏 잘 참고 왔는데... 산전수전 심지어 공중전까지.


                                                      <분황사 앞 메밀꽃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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