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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18. 2022

안. 단. 테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지난 주말 흘러 간 영화 <맘마미아 2>를 우연히 TV에서 보던 중, 아주 오래전 기억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느 해였는 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어떤 모임의 술자리였다. TV에서 장윤정이라는 가수가 <어머나>를 부르고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던 노래. 쉬운 가사와 간드러진 창법에 모인 이들 중 누군가가 흥미를 보이자, 마주 앉은 이가 그 노래에 관해 아는 체했다.  


윤명선이라는 작곡가가 계은숙을 위해 만든 노래인데 거절당했지. 그 뒤 주현미 등도 가사 내용이 너무 유치하다, 라는 이런저런 이유로 부르지 않겠다고 해서 장윤정이 한 테 까지 온 거야. 장윤정이도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다고 해, 그런데 이 노래가 대박이 됐어, 로또가 됐지. 가요계 어떤 사람은 대놓고 이 곡이 뜨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지 아마? 그 뒤 지졌는지는 안 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를 듣던 이들이 그의 박식한 가요계 뒷이야기에 엄지 척. 이어 그가 <어머나>를 장난 삼아 경상도 버전으로 부르자 술좌석은 뒤집어졌다.     

<! ~ ! ~ 이라지 말라카이 ~ / 가스나 마음은 갈대라카이 안 된다 안 하나 와이 카노 잡지 말라카이~ ... ... ...> 그 노래가 끝나자 어떤 짓궂은 이가, 나에게 농을 던졌다. 영어로는 어떻게 불러?     


평소 노래방에서 엉뚱한 팝송으로 분위기 깨는 나에 대한, 짓궂은 이의 소심한 복수였다. 그때 씩 하고 웃어넘기지 못한 나는, 오기가 발동해 서너 잔 마신 술의 힘을 빌렸다. 젓가락 장단을 치면서 되는 영어, 안 되는 영어로 불러댄 것이다. <어머나>의 영어 버전.     

<맘마미아! / 맘마미아! / 와이 돈츄 유 웨이 오프 / 어 우먼스 마인드 이즈 리드 / 노! / 왓스 롱 위드 유? / 돈 애스크 미~.........>     


어설픈 그러나 순발력만큼은 -<어머나>를 영어 오 마이 갓으로 안 하고 이탈리아어 맘마미아라고 부른- 인정받은(?) 나의 대응에, 그리고 이어진 다른 이들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그날의 한참 흥겨웠던 추억들이,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맘마미아 2>를 보면서 떠올랐던 것이다. 까마득히 잊고 살았는데. 기억이라는 것이 이렇게 우연히 소환되기도 한다.               


                                                                <맘마미아>     

나는 사실 뮤지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흐르던 대사가 갑자기 노래로 바뀔 때, 영화의 몰입이 깨지기 때문이다. 물론 어릴 때부터 봐 오던 <사운드 오브 뮤직>은 예외였지만. 그러다 우연히 몇 해 전 방한한 프랑스 배우들이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레미제라블>을 보고 뮤지컬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 전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후, 뮤지컬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본 영화가 <라라 랜드>였다. 좋았다. 그런데 <맘마미아 1>은 보지 못했다. 뮤지컬이 별로라고 생각하던 때 (10여 년 전인 2008년) 상영된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영화에 대해  아는 상식이라고는, 좋아하는 아바(ABBA)의 노래가 주옥처럼 펼쳐지고, 007의 피어슨 브로스 넌이 나오는 반면, 내겐 시큰둥한 메릴 스트립이 나온다는 정도.     


수많은 히트곡들을 세상에 내놓고 세계적인 명성을 차지했지만, 1972년 데뷔해 딱 10년 활동하고 해체한 4인의 혼성 팝, 댄서 그룹 아바. 당시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바를 사랑했고, 그 언저리에 젊은 나도 있었다. 그런데 <맘마미아 2> 영화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흥겨워야 할 나는, 먹먹함을 느꼈다. 너무 감성이 여리기 때문인가. 아니면 어리바리해서 그런가. 어쨌든.     


<워털루>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몇 살이었던가?. <댄싱퀸>은 어디서 들었지? 종로에 있던 디스코 장이었나. <아이 해브 어 드림>을 만났을 때, 내 꿈은 뭐였지? 처음 들어보는 <마이 러브, 마이 라이프>. 이곡도 좋았다. 이제는 70대가 되어 버린 셰어가 중저음으로 부르는 <페르란도>. 여전히 남자의 맘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압권은 역시 <안단테>였다. 그 노래가 불릴 때, 나는 눈감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숨마저 죽이고 있었다. 온몸이 출구 없는 어둔 수렁으로 천. 천. 히  빨려 들어갔다.     

Take it easy with me, please. Touch me gently like a summer evening breeze. Take your time, make it slow. Andante, Andante. Just let the feeling grow ... ... ...          


깊은 수렁 속에서 나는 홀로 중얼거린다.     

안단테. 안단테. 안단테. 나의 템포가 당신의 템포와 다르듯, 우리는 서로의 템포에 때로는 어울리고, 때로는 어긋나기도 한다. 나의 템포가 누군가의 템포와 보폭이 같아지면 즐거움이 되지만, 발맞춤이 안 맞으면 아픔은 배(倍)가 된다. 내 인생은 안단테이고 사랑은 비바체이고 싶다. 인생이 비바체면?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안단테. 안단테. 안단테.     

                                                             <안. 단.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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