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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15. 2022

삶의 포맷은 가능한 일일까?

그러고 포맷은 자비인가, 폭력인가.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엘 다녀왔다. 늦은 오후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여전히 차도는 많은 차들로 엉켜 혼돈 그 자체였고, 인도는 수 없는 인파들로 어깨를 좁혀야 하는 좁은 길이었다.


몇 개의 건널목을 건너 이제는 화상의 상흔을 찾아볼 수도 없는 흔히 남대문이라고 불리는 崇禮門 옆을 지나 시청 광장 앞에 섰다.


서울역에서 이곳까지 2 Km 쯤 되려나. 바쁠 게 없는 나는 한참 잊고 있던 사이먼과 가펑클의 사이먼의 자작곡 노래 <Slip Sliding Away-미끄러지고 넘어지고>를 흥얼거리며 미끄러지듯 걸었다. 가사가 가물거리는 부분은 허밍으로 때우면서.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시의 어둠이 산속 어둠만큼이나 빠르게 주위를 덧칠했다.


무교동 낯익은 낙지볶음 집에서 약속한 <그>를 기다린다. 어떤 이는 가까운 과거에, 지금에, 가까운 미래에 사는 사람이라면,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는 먼 과거부터 그리고 아주 멀 미래에 나와 함께 살 사람 중에 하나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지낸다. 그를 만나면 긴 말이 필요 없다. 우린 눈빛으로 말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냥 서로의 모든 것으로부터 상대의 생각을 읽는다. 그와 함께하는 음식마저도 관계이고, 삶이며, 문학이다.


주문한 '낙볶'의 독한 신(辛) 맛에, 소주는 물이 되었고 곁들여 나온 달걀찜은 달았다. 앞에 앉은 그가 내게 묻는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소주 한잔 입에 털어 넣고 내가 답한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 자작)하고 眄庭柯以怡顔 (면정 가이 이안)이라.

(술 병을 끌어당겨 혼자 자작하고, 정원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도현명의 <귀거래사>의 한 소절을 읊조리니, 그가 한참 키득거리며 웃어댄다. 그렇게 자지러지던 웃음은, 그가 자신의 눈꼬리 물기를 닦는 것으로 그쳤다. 나는 그가 왜 웃는지 그리고 왜 글썽이는지 안다. 학부 교양과목 한문 시험 전 날 스터디 때 이 문장을 핑계로, 책상을 물리고 술상을 차렸던 일을, 그도 나처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젊은 날 우리가 스물도 채 되지 않았던 그 시절. 다가 올 미지의 삶을 준비하던 아니 두려워하던 그때에 우리는 저 시구 등을 안주 삼아 (비록 막걸리와 새우깡이지만) 허세를 부리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단순한 심정인 척 그러면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 가득한 웃음을 가면 삼아 내 어깨를 흔들며 시니컬한 목소리로 그만하라, 제발 그만하라, 내 물음에 맑게 답하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다구 친다.


내가 답한다. "태생이 낙볶처럼 독하고 맵지 않아, 만만치 않은 정글 같은 아니 징글징글한 현실을 만나,여전히 징징거리며 지낸다.", "쓴 술 같은 시간을 최근 겪고, 곡기를 씹기도 여의치 않았다.", "사고는 굳어지고 말은 자꾸 거칠어진다."라고. 그러자 웃음을 거둔 경직된 표정으로 그가 술을 따르면서 내 말을 끊고 으름장을 놓는다. "에둘러 말하지 말라!"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 것으로 내가 그의 다음 물음에 답을 피하자, 그는 더 이상 물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술잔을 내려놓으며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내 독백에 영민한 그가 답한다. “갑자기 웬 막심 고리키!” 그리고는 그가 말을 잇는다. 내가 묻지도 않았건만. 난, 종종 스스로에게 물어. 왜 사냐고. 이 해답을 구하기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지. 나중에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그때는 알 수 있을 거라는 실 날 같은 희망을 품고. 그러나 죽음의 순간까지도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답을 찾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 아니야. 만족할 만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 그래도 최선을 다하며 살고자 하지. 고리키 말처럼 난 불행하지 않아 난,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깐.”


내일 무엇을 해야 알지 아는 그가, 나는 부러웠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일 너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염없이 걷고 사진을 찍고... 또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도는 삶다가 그때가 되면? 도리질한다.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다.



둘은 말없이 술을 한참 동안 주고받는다. 그리고 많은 말을 하고 듣는다. 마신 술은 몸을 휘청거리게 하고 대신 우리의 아니 나의 기억 주머니는 텅텅 비운다.


[술 없는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술은 처음부터 흥을 위해 창조되었다. 술은 알맞게 마시면 사람들에게 생기를 준다] 구약성경 집회서 31장 27절을 인용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안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그와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 홀로 잠들었고 많은 꿈을 꾸었다. 나는 어느 낯선 방구석에서 뭔가를 읽고 있었다. 내 내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강줄기를 잡아내고서, 나를 그려내고 있었다. 자음과 모음 그리고 부호로 엉켜있는 추상적인 것들을 글로 표현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길을 미끄러졌다. 걸었다. 걷다가 멈춰 사진을 찍었다.


름대로는 참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편향된 사고와 왜곡된 시선과 정제되지 않은 말투 때문에 자꾸 도망을 친다. 숨는다. 어제도 멀리 도망쳤다. 숨고 싶었다. 그러다 낯선 국도의 녹색 나무들 사이에게 핏빛보다 붉은색으로 머리를 헤쳐 푼, 배롱나무 앞에서 숨이 막혀 멈춰 섰다.


***

“요즘이야 뭐 이 나무처럼 살긴 어렵지.”


“무슨 뜻이에요?”


“아버지들 얘기야. 처자식이 딸리면 치사한 것도 견디고 이념조차 필요에 따라 바꿔야지. 오늘의 아버지들,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갔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거든. 어느 날 애비가 부당한 걸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낚시질이나 하고 있어 봐. 이해하고 사랑할 자식들이 얼마나 있겠어?

***


박범신의 <소금> 중 이 대목이 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배롱나무가 나를 내려다보다 말한다.


“안다. 그 터무니없는 흉기들부터의 아픔을... 그러나 돌아가라.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지 않는가? 조금만 더 참고 견디기. 포맷이라는 자비를 청하면서”


포맷은 자비일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일까?


경북 주왕산 자락에 위치한 주상절리 길목에서 만난 제비나비... 어린 시절엔 흔히 보던... 참 오랜만에 만난 나비였다. 기억은 포맷되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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