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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n 25. 2022

남는 장사

<그>에게 말을 전한다

불편했다. 김영하라는 작가의 단편 <이사>를 읽고. 일부러 사서 읽은 것은 아니었다. 책이 가까이에 있었기에 우연히 손을 댄 것이다.


결혼한 지 5년이 된 젊은 진수와 아내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조금 더 큰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산 덕이다.


불편 1. 하필이면 이사 짐이 옮겨지는 날, 전후로 열흘간 낡은 엘리베이터 교체 때문에 십이층까지 걸어 다녀야 했다. 이것 때문에 이사 날엔 인부들로부터 시비 거리가 된다. 젊은 부부가 잘 못한 것도 아닌데.


불편 2. 이사 당일 날 이른 아침 중앙아시아에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황사가 불어와, 아파트 앞산을 집어삼켜 버렸다. (황사가 심했다는 말)


불편 3. 세 명의 인부들은 을의 입장이면서도 갑 질의 정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직원들의 팀장 격인 노란 조끼의 오십 대 사내의 반말과 욕지거리... 그리고 안하무인격인 행동들.


불편 4. 급기야 새로 이사 가는 집, 벽지와 비닐 장판을 흠집 내더니 이불장 뒤편엔 커다란 구멍까지 냈다. 진수가 그들의 설익은 손에 대해 항의하자, 그럼 그냥 가겠단다. 아직 이사가 진행 중인데.


불편 5. 이런 시비들에 대해 따지려고 그들의 사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했으나 받지를 않는다. 급기야 인부들은 잔금을 미리 주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공갈한다.


불편 6. 소설의 마지막 부분. 진수 네 부부가 애지중지하던 4,5세기쯤의 가야토기가 -이사 전부터 인부들에게 취급 주의를 신신당부했건만- 산산이 조각 난 채 발견된다. 그들은 벌써 떠나고 없는데...


이사는 저희에게 맡겨두시고 여행이나 다녀오세요, 라며 이사 짐 계약 전에는 간이라도 빼 줄 것 같은 이사 짐 센터 사장은, 계약 이후 연락이 두절된다.


당일 날 온 인부들은 손 없는 날, 자기들이 아니면 이 이사가 온전히 마무리되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칼자루를 휘둘러 댄다. 어설픈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갑이어야 할 집주인이, 을이어야 인부들의 횡포에, 그저 모른 척 조용히 머리 조아릴 수밖에. 편리함 때문에 시킨 포장이사가 불편함을 포장채로 들고 온 꼴이 되었다.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그래도 나중엔 권선징악?으로 끝날 것이다, 라는 실 날 같은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포커 포인트 격인 박살난 가야토기의 잔해 앞에 망연자실하는 진수의 모습에, 나는 책을 덮었다.


나약한 소시민인 진수와 아내. 엘리베이터도, 황사도, 이사 짐 센터 사장과 인부들의 황당한 태도도, 박살난 가야토기 앞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설 속 진수만이 그런 불편함을 느끼겠는가? 살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힘듦을, 자주 겪고 사는 게 인생일는지 모른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혹은 엉겁결에 완장이라도 차게 된 사람이 상대를 괴롭히고 상처를 준다.


그때마다 따지고 밝히려고 하니, 더 피곤하고 일이 커지기에 참는다는 명목으로 피한다. 잠시 속이 타고 끊지만 참고 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기에.


어제 포항 전시회 사진을 회수하고 정리 후, 홀로 여러 시간 길 위에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다듬었다. 내 삶에 있어 불편하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뭘까? 하나(글)둘(사진)셋(수영)넷(신앙)다섯(직업)...


적지 않다. 산술적으로 불편함과 편함(행복) 수치 비교는 의미가 없다. 단 하나만이라도 그것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다.


얼마 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신음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평소 닫고 살던 마음을, 내게 열어 보인 <그>에게 말 전한다.


힘든 삶도, 고난도, 그 어떤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그러다가 혹, 그것들을 통해 뭔가 하나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 분명 그것 또한 남는 장사가 아닐까?


    결국은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가을이면 첨성대 인근에 핑크 뮬리가 이렇게 자태를 뽐낸다. 남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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