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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May 16. 2022

한 마디도, 한 줄도 너무 길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며칠 전 병원 대기실에서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종영된 연속극 같은데, 한꺼번에 몰아서 연이어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그 극 중에 북한의 숙소로 추정되는 곳에 걸려 있는 낯익은 그림 두 세 점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때 내 입에서 ‘어? 대박!’ 소리가 절로 났다.               


미국 워싱턴 D.C. 에 가면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National Gallery of Art)라는, 개관한 지 올해로 80여 년이 되는 국립미술관이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답게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고갱, 고흐 등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인터넷으로 확인해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참, 편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그 미술관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눈물이 나도록) 가장 감동받은 그림이 있는가?라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의외의 화가를 손꼽았다. 미술 쪽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에겐 아주아주 낯선 마크 로스코(1903-1970)라는 이가 바로 그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마크 로스코>


그의 그림을 보면 풍경도, 인물도, 스토리도 없는... 마치 ‘한마디도 길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그림에서 있는 것이라고는 경계가 불분명한 단순한 색 덩어리, 그것 이외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 한 평론가는 로스코가 말하고자 하는 ‘단순함’이란‘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즉 로스코의 단순함은 무(無)에다 하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다(多)에서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라는 것.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나는 미술 감상은 즐기지만, 전문가가 아니니 이 정도로 평은 마쳐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애매한(?) 그림이 <사랑의 불시착> 속 북한에서도 즐긴다는 사실에 내가 놀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건 담당 작가와 PD의 연출일 뿐인데... 심각한 것은‘북한과 마크 로스코’의 조합이 어색하다는 내 편견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로스코의 이 풍을 즐긴다. 이런 종류의 그림을 그리는 이는 로스코 이전에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이 있고, 이후에는 바넷 뉴먼(1905-1970) 등이 있다. -이 시대적 구분은 단순하게 그들의 탄생 연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특별히 이들 중에 몬드리안을 좋아하기에 내 핸드폰 프로필 사진으로 그의 그림을 배경으로 한참 사용한 적이 있다.     

                                                             피에트 몬드리안 作                                  


             

바넷 뉴먼 作


이 그림들을 보다 보면 그들이 추구하는 것, 즉 오직 색으로만 ‘감정에의 집중’을 나타내고자 하는 작풍에 나는, 눈물까지는 아니어도 깊은 공감을 표하곤 한다. 아마 나이가 물들어 가는 탓일 것이다. 날이 갈수록 시답지 않은 모임을 피하고 남들과의 말 섞임을 즐기지 않고,... 몬드리안 같은 화가들의 그림을 들추며... 시(詩)도 내 오래된 습관 중에 하나인 일본 시‘하이쿠’를 자주 읊조리면서...               


그러고 보니 몬드리안 등과 하이쿠는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몇 가지 색만으로도 충분하다와 “한 마디도 너무 길다.”라고 말하는 바쇼가 쓴 시처럼  [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  [이 숯도 한 때는 /흰 눈이 얹힌 나무 가지였겠지]  시 3편이다. 이거면 된다. “한 줄도 너무 길다.” 그러고 보니, 정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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