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vant gard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철 Francis May 31. 2022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대작(代作)과의 불편한 진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전직 대통령이 말한 이 말이, 시중의 유행어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전에 기자는 기사를 발(足)로 써야 한다고 배웠다. 책상에서 머리로만 쓴 글은 허구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은 다치게 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에 기사로서 가치가 약하지만, 사람이 개를 문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건 ‘대박’ 기사 감이 된다고 했다. 기사는 미사여구를 걷어 내고 반드시 ‘1H 5W' (일명 6하 원칙)에 따라 써야 한다,라고도. 짧든 길든 기사에도 이런 원칙이 있다.     


사진도 그렇다. 핸드폰 카메라는 구도만 잘 잡고 찍으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나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비싼 DHLR 카메라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 모드의 장단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피사체를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따라, 숙지한 모드를 정해야 하고 구도뿐만 아니라 노출... 등등 그리고 인화하기 전에 약간의 마무리 포토샵 작업도 필요하다. 정형화된 서예와는 달리 보다 자유로운 필법의 캘리그래피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붓 가는 대로 휘갈긴 대충 쓴 캘리가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캘리도 기본 원칙을 가지고 써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좀 아는 분야도 이렇지만, 잘 모르는 음악에도 화성학이니 뭐니 기본이 있고 원칙이 있다. 세상 모든 분야가 그렇다. 그런데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는 원칙이 애매해진다. 1917년 미국의 마르쉘 뒤샹이라는 미술가가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남성용 변기에 자신의 가명(假名) 싸인으로 작품명을 ‘샘’이라 쓰고 전시장에 출품했다. 회화(미술작품)가 캔버스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그 당시엔 뒤샹의 이 변기 작품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시비비의 대상이 되었지만, 현대미술사에서는 그를 현대미술의 챕터를 다시 쓴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리얼하게 말하면 붓을 잡을 줄 몰라도 미술가가 될 수 있다고 현대미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뒤샹이 그림을 그릴 줄 몰라다는 게 아님-     


오래전 (2020.06?) 자신을 화수(화가 겸 가수)라고 자칭하던 A가 사기죄로 법정 다툼을 벌이다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구매자들은 그가 자신의 작품이 대작(代作)이라는 것을 고지 않고 팔았으므로 사기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부 독설가들은, 그가 평생 주로 외국의 유명한 노래들을 번안해 부르면서 가수 생활을 하더니, 미술에서도 남(조수)에게 작품을 대작시키며 미술가 행세를 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주로 화투 등을 직접 잘라서 만드는 콜라주 기법이 주류였다. 그때는 조수의 도움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랑 등에서 콜라주보다는 일반 회화작품이 더 높게 거래되다 보니, 그의 작품 방향은 자연스럽게 전업 화가 조수의 형상화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판 작품들이 친작(親作)이 아니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자, 그는 그들이 현대미술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맞다. 현대미술은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차원의 기준점이 모호하다. 그래서 진입의 벽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종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그런 작품들 중에는 혼자서는 절대 마무리할 수 없는 것도 -전문가의 손길이 꼭 필요하거나 대규모의 설치미술 등- 있으니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영국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를 들먹이며 ‘그도 나처럼 아이디어만 내고 나머지 작품은 조수들이 맡아 제작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도 팩트다. 작품  당 수백 억 원 이상 호가되고 있는 현재 50대의 허스트도 A와 같은 대작 작가다. 하지만 피카소 이상의 대접을 받는 허스트에 비해 사기꾼 취급받는 A가 이런 볼맨 소리를 할 만하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우리가 쉽게 접하는 카툰 계에서도 조수들의 작업은 오래전부터 자연스러운 관행이었다. 하물며 미술 분야에서도 그들의 자리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가는 아이디어만...’ 이런 논리라면 아이디어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그맨들도, 현대미술가 대열에 끼여 들어가 일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A를 비난하거나, 혹은 옹호할 생각도, 자격도 없다. 단지 그 판결에 대해 뭐라고 표현하기가 애매할 뿐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것>이 예술의 사전적 의미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말인데 막상 글이나 말로 구체화시켜 보지만 여의치가 않다. 최근 과연 현대미술에는 정말 원칙이라는 것이 없어도 되는 건가? 예술의 경계선은 어딜까? 날씨가 더워 오니 별게 다 궁금한 요즘이다.                                   


                     수백 여억 원을 호가한다는 현대미술의 거장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상어>     

매거진의 이전글 한 마디도, 한 줄도 너무 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