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vant gard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철 Francis Jun 01. 2022

<이삭 줍는 여인들>

사진작가의 시선에서 본,

피사체를 단순 모방하는 것이 화가의 본업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피사체를 똑 같이 그려, 화폭에 단지 옮겨 놓은 것이 예술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림에 화가의 개념(concept)이 개입되면서 미술은 획기적인 발전을 한다. 사진도 그렇다. 그냥 피사체를 찍는다면 그건 그냥 사진이다. 그러나 그 사진에 작가의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거나, 고유한 이야기가 담았을 때 그 사진은 예술로서 인정을 받는다.     


 화가가 아닌 사진작가의 시선에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 드려다 보고, 느낌 소회를 적어 볼까 한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1857년 작)               


구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3명의 아낙들이 흔히 말하는 황금 구도를 이룬다. 게다가 사각에서 (대각) 선을 그으면 가운데로 ‘선 원근법’이 형성된다. 선 원근법이란, 그림 중앙의 한 점(소실점)에 가까이 갈수록 물체가 줄어드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멀리 있는 풍경일수록 푸르고 흐리게 그려서 거리를 나타내는 ‘공기 원근법’도 사용한 듯하다. -사진에서는 이런 방식을 아웃 포커싱 혹은 심도가 얇다, 깊다,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색조의 조합이다. 저 그림의 대지 색과 3명의 아낙의 피부색이 거의 유사하다. 사진에서는 그렇게 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림에서는 화가가 의도하는 대로 그려낼 수 있다. 이건 우연히 일치한 게 아니라 화가의 숨은 의도가 있는 듯하다. 자연과 일하는 인간은 일심동체?     


반면 저 멀리 요즘으로 치면 고급 승용차인 말을 타고 있는 지주(혹은 감독관)로 보이는 남자와 그 옆에 쌓여 있는 곡물들. 그리고 가난한 차림의 3 여인과 드문드문 땅에 떨어져 있는 이삭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극과 극의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세 발 자전거만큼이나 안정감을 주는 3이라 수(數)의 시각에서 조금 더 그림을 드려다 보자. 왼쪽 2명의 아낙 중 한 아낙은 허리를 굽힌 채 땅에 떨어져 있는 이삭을 ‘’고, 또 다른 아낙은 찾은 이삭을 ‘’는 장면. 그리고 맨 오른쪽 아낙이 그것들을 모아 ‘’고 있는 설정도 흥미롭다. 이 디테일한 장면의 사실 여부 확인은 좀 더 큰 사진을 자세히 드려다 보아야 가능하다.     


마지막 눈여겨볼 것은 절대 우연일 수 없는 밀레의 의도된 색 선택이다. <파란색 + 흰색 + 붉은색>의 두건과 셔츠를 입고 있는 아낙들.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를 상징하는 밀레 자신의 조국 프랑스의 ‘라 트리콜 로르’(프랑스 국기)를 여러 색 중에 섞어 에둘러 그려 넣은 것이다.     


밀레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아닌 이 그림을 통해 분명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어떤? 해석은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 미술에 대해 1도 모른다. 이 글은 사진작가로서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쓴 것이니 -미술 전문가들이 혹 이 글을 보게 되면?- 너무 탓하지 말기 바란다.    


                                                                   <사족>         

미술 역사에 있어서 ‘그리스 로마 미술’을 <고대(고전)>라고 말한다. 신 중심의 기독교 문화가 무엇보다 우선이었던 <중세>는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미술’이 주류를 이뤘다. 신보다는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했던 시대가 <르네상스>다. 이에 반해 이어지는 <바로크>는 왜곡된 형상을, <로코코>는 사치스러움을 상징한다.     

한 시대의 문화 사조는 그 당시 문화에 반(反)하여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제멋대로인 바로크와 너무 예쁘기만 한 로코코에 이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이상적으로 그린 <신고전주의>가 등장한다. <낭만주의> 시대부터는 개인의 감정이 전달되기 시작한다. 미술에 있어 감정의 표현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이때부터 현대미술이 탄생하는 시발점이 된다.     


낭만주의 화가들이 미술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 했다면 <사실주의> 화가는 ‘삶의 이야기’를 다뤘다. 너무나 평범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작품으로 옮겨지지 않던 삶의 이야기들이 19세기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밀레가 바로 이 사실주의 대표적인 화가 중에 하나다.     


당시 진보주의자들은 이 그림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밀레가 유럽과 아메리카 노동자 계급의 곤궁한 삶을 사실적이고 자연적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밀레가 가난한 이들의 힘겨운 노동(빈부격차?)을 부각해 사회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혹평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