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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n 08. 2022

에밀 졸라의 부재

타는 목마름만...

문 전 대통령이 양산 사저로 옮긴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그 사저 앞에서 욕설을 해대는 극우 성향 사람들의 방송을 어제 우연히 들었다. 시정잡배들도 쓰지 않을...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위엔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보수니 진보니, 뭐니 하는 진영으로 나뉘어, 상대의 인격을 파괴하고 가족을 난도질하고 있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상대의 불행을 재미 삼아 희화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유치 찬란한 일이 일찍이 이 땅에 있었던 적이 있었나? 할 정도다.     


자신의 이념 때문에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그 표현에 있어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지 오래됐다. 해도 해도 너무 ‘도’가 지나치다. 이렇게 아무 말이나 하는, 아니 투척해대는 케이스는 이곳저곳에서 차고도 넘치며 말이나 글로 옮기기도 부끄럽고 모멸스러울 정도다.     


1백여 년 전 프랑스에서도 정치적, 사회적, 사상적, 그리고 종교적으로 심하게 양분되어 대립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목로주점>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 -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라는 글이 신문에 실리자, 유럽의 많은 지성인이 그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졸라는 뭘 고발했는가?     


19세기 말, 유럽은 반(反) 유대주의가 극에 이른다. “유대인은 신(예수)을 죽인 저주받은 민족이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처럼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자이며 매점매석을 일삼는 사악한 종족이다. 그들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영원한 적이다.”라는 식으로.     


1894년 말, 프랑스 현역 육군 대위인 드레퓌스가 간첩으로 몰려 반역죄로 기소된다. 그 일로 그는 치욕적인 군적 박탈과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 섬으로 유배된다. 그러나 2년 뒤 진범이 적발되었으나 참모본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한다.     


이유는 유대인인 드레퓌스가 당시 반유대인 정서에 맞물려 있었고, 이미 저지른 군 수뇌부의 증거 날조와 재판부와 언론의 부실한 조사가 뒤레퓌스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다. 프랑스는 두 쪽으로 나뉘어 광기에 빠진다. 뒤레퓌스는 어찌 되었든 간에 무조건 유죄라는 보수파(군부+가톨릭+보수언론 외)와 무죄라는 지식인파로. 그래도 오판(誤判)은 쉽게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때 에밀 졸라가 등장한 것이다. 뒤레퓌스가 무죄임을 주장하며 <나는 ~>를 쓴 것이다. 그때가 1898년 1월이었다. 그러자 보수파를 지지하는 대규모 군중의 항의 집회가 열리고 유혈 충돌이 빚어졌다. 유대인에게 테러를 가하고 상점을 약탈했다. 졸라의 기사를 불태우고 그의 초상을 목매달았다. (촛불은? 프랑스 국기는?... 없었다 ㅠㅠㅠ) 보수파들은, 졸라를 기소해 그가 군법회의를 중상모략 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세워 징역 1년에 처한다.     


프랑스는 광기(狂氣)에 빠져 온전한 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낼 수 없었다. 단지 ‘뒤레퓌스가 유죄인가? 무죄인가?’라는 한 사건 때문에. 벌거벗은 프랑스의 민낯이 온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프랑스는 마치 내전 상태에 빠진 듯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사건 발생 12년이 지나서야 뒤레퓌스는 무죄로 선고받고 복권이 된다. 유럽의 지성, 졸라는 그 몇 해 전에 가스 중독으로 사망하고... 그러나 21세기 들어 졸라처럼 불의한 세력과 싸우는 양심적 지식인들의 승리 등을 통칭할 때 <드레퓌스 사건과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거론되곤 한다.     


혹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박근혜나 조국이, 이 시대의 드레퓌스라고 말하고 있다. 글쎄... 나는 이 논쟁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내가 소망하는 것은 지성에 기대고 싶을 뿐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에밀 졸라를 향한 존경과 가없는 찬사에 나는 사무쳐 있다. 군인과 성직자 같은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백만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라는 말로 그에 대한 존경심을 보였다.               


우리 시대엔 프랑스의 에밀 졸라 같은 이를 위한 자리가 없다. 우리 지성은 실종되었으며 우리의 용기는 후안무치로 대치된 지, 잊힌 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남은 건, ‘타는 목마름’ 같은 갈증뿐이다.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식사 전에 상석에 앉은 이 집안의 가장이 절대 ‘드레퓌스’ 이야기는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염려했던 드레퓌스가 화제에 올라 결국 의견을 달리하는 가족끼리 난투극을 벌리고 만다. 1898년 당시 프랑스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2컷짜리 만평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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