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철 Francis May 17. 2022

가슴이 콩콩...

송창식

1968년 초에 결성된 <트윈폴리오>가 활동한 기간은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름의 LP(long player) 판도 단 한 장뿐이다. 내 나이 20대 초반에 세운상가에서 그것을 어렵게 구했다. -그들이 데뷔할 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집에 돌아와 턴테이블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숨죽이며 듣던 날, 하필 겨울비가 내렸던 걸 나는 기억하고 있다.


'창문 밖 빗소리'와 '턴테이블 바늘과 LP판이 만들어 내는 잡음'은, 내게 윤형주로 송창식으로 다가왔다. 윤형주의 목소리가 봄바람처럼 감미롭고 포근함을 준다면, 송창식의 음색은 황토 바람으로, 듣는 사람을 압도했다. 윤형주가 와인이라면 송창식은 막걸리 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윤형주 이미지가 엘리트 (부유한 집안에서 경기고에 연세대 의대 재학 중)라면, 송창식은 서민적(빈곤한 결손 가정에 서울예고 중퇴) 분위기였다.


그 재킷 앞표지는 기타를 들고 있는 윤형주와 송창식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담았다. 뒷면에는 그 노래의 가사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축제의 노래>부터... <슬픈 운명>... <웨딩케이크>... <내 사랑 어디에> 등 대부분 번안곡이었고 앞뒤로 총 12곡 실려 있었다. 그래도 재생 시간이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서울을 떠나 이사 오면서 챙겨 오지 못한 그 판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던 몇 해 전, 그 LP판에 수록된 노래 그대로, 컴퓨터를 이용해 CD로 담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몇 장 구워(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누워 주고, 막상 내 것은 잃어버렸다. 그런데 며칠 전, 차 글러브박스를 정리하다가 그것을 찾았다.


지금 들어도 한 곡 한 곡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Brown & Dana의 <Ace of Sorrow>을 번안해 부른 <슬픈 운명>.


-헤어지는 아픔을 잊기 어려워 미소 짓는 내 슬픈 운명, 날 버리고 떠나가는 임아, 홀로 떠나면 난 어이해- 애잔한 음악에 윤형주와 송창식의 하모니는  나를 울먹이게 했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 케이크-라고 시작하는 <웨딩케이크>은 마치 나의 아픈 사연이라도 되는 양, 가슴 아린 온갖 상상을 하곤 했다.


그 가사가 하도 눈물겨워 원곡을 찾아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던 기억도 아련하기만 하다.  원곡을 부른 가수는 미국의 코니 프란시스라는 여가수. 한 주부와 그 남편의 알콩달콩한 일상사를 웨딩케이크를 소재로 한 평범한 노래였는데... 트윈폴리오가 전혀 다른 '새드 스토리'로 바꿔 불렀던 것이다.


윤형주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지만 송창식은 일 때문에 두 번 만난 적이 있다. 처음은 30여 년 전 강남 충현교회에서, 그가 이문세의 결혼식 축가를 불러 주러 왔을 때였다.  인터뷰 일정을 잡고  그가  축가를 위해 제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목(소리)을 푸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던 일이 아직도 내 옆구리를 간질인다.


그는 당시 가수들 중에서 기인으로 통했는데, 그게 꼭 개량한복 차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모든 게 괴이했다. 초면인 사람들한테도 히쭉히쭉 웃음을 곧잘 던지는 모습이나, 조금 촌스러워 말투나 행동도... 그러나 그는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곤 했다.


하여튼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은 그 며칠 후 영동호텔 커피숍이었다. 낮과 밤이 일반인과 다르게 살고 있던 그의 집에는, 전화기도 없다고 옆에 앉아 있는 무늬만 매니저가 투덜댔다. 송창식을 만나기 위해서는 미사리 있는 라이브 카페로 가야 한다라고 자신의 수고를 생색내던 그 사내의 눈 째림도 내 머리에 맴돌고 있다.


그와 이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살갑게 다가온다. 송창식과 관련된 전설도 많다. 그중 서정주 시인과의 인연도 재밌다. 자칭 타칭 당대 최고 시인의 시를 노래 가사로 만들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절대 불허하던 서정주. 그러나 유독 송창식에게 만은, 자진해서 자신의 시로 노랫말을 만들어도 좋다고 해서 만들어진 노래가 <푸르른 날>이다.


당시 청년문화의 선봉장이었던 소설가 최인호가, 입영 문제 등으로 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송창식에게 근사한 서정적인 노랫말을 선사한다. 그 글에 송창식이 곡을 담아 부른 노래가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밤눈>이다. 이 노래를 눈 오는 밤에 들어 보길 권한다. 아니 밤이 아니더라도 눈 오는 날이면 언제든. 그러면 왜 시인과 소설가가 가인(歌人)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래를 사랑해 만들고 부르며 평생을 살아온 송창식. 그도 벌써 70대다. 흔히 송창식을 포크계의 대부라고 말하지만 어떤 평론가는 아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송창식은 미국 음악(포크)을 모방하기 싫어했다. 대신 자기가 부르고 싶은 대로 멋대로 불렀다고 한다. 그것이 한국 음악사에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것이 ‘송창식 류의 노래가 탄생’ 한 것이라고 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반된 목소리의 윤형주와 송창식. 하지만 어느 다른 듀엣과는 달리 내게는 중독성이 강하다. 수 십 년 동안 그들의 노래를 들어왔다. 이쯤 되면 질릴 만도 하건만 지금도 여전히 그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콩콩거린다. 거울만 보지 않으면, 나는 적어도 아직은 20대다.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젊게 살고 싶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은 아니다. 차림새에 신경 쓰자. 말과 몸짓을 짧게 하고 유머를 잊지 말자. 좋은 생각만 하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자. 운동으로 체력을 다져야 한다. 책 읽기와 음악 듣기 그리고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말자. 그래야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는다. 추하게 나이 들지 말자,라고 다짐해 본다. 여전히 가슴은 콩콩...


                                             <트윈 폴리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매거진의 이전글 테너들의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