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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May 30. 2022

취한다는 것은 넋을 잃는 거다

<You raise me up>

오랜만에(?) 낮술을 했다. 낮에 가볍게 맥주 마시는 것을 낮술이라 할 수는 없다. 내가 말하는 낮술이라는 것은, 제대로 된 안주 앞에서 상대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시는 술을 의미한다. 물론 혼자 마실 수도 있다.     


지난주일 차일피일 미루다 오랜만에 세 사람이 모여 점심을 같이 하면서 소주 3병을 비웠다. 아니 한 사람은 오후 일정이 있어서 마시지 않았으니 둘이서 3병을 마신 거다. 이런저런 서로의 이야기가 또 다른 안주였다. 취하지 않았다.     


산다는 게 편안하지 않다. 고민은, 힘듦은, 아픔은, 모양만 살짝 바꿔 누구에게나 치근거린다. 그 징징거림이 사라진다 해도 또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곤 한다.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들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귀가해 잠시 낮잠을 자고 깼다. 이럴 땐 낮이 길게 느껴진다. 착각이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안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노래 한곡에 취했다. 소주로도 취하지 않았는데, 이 노래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처음 듣는 노래도 아닌데...     


전에도 틈틈이 본 버스킹(길거리 공연)이다. 머리숱은 적지만 구레나룻과 코 밑과 턱에 거친 수염을 기른 노신사. 안경과 목도리와 블랙 슈트가 참 잘 어울린다. 60대 중반의 네덜란드 성악가 마틴 하켄스라는 사람이다.     


유럽의 어떤 도시로(네덜란드?) 추정되는 길거리에서 그가 뒤집어 놓은 모자를 -모금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앞에 놓고 두 손을 모아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때 <You raise me up> 전주가 흐른다. 무심코 지나던 사람들이 가든 길을 멈추고 그에게 집중한다.     


청하하고 부드러우며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가 거리를 덮는다. 가난 때문에 성악공부를 하다가 접어야 했던 그다. 노래를 포기하고 힘든 삶을 살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제빵사로 쉰아홉에 실직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그냥 주저앉지 않았다.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에 나가 우승하면서, 평생소원이었던 성악가의 꿈을 이룬다. 그 나이에. 이제 그는 자신의 음반을 내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지만 가끔 길거리에서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돈이나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겪어 본 사람은 안다. 고단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를. 그래서 그는 기회가 되면 이렇게 버스킹을 한다고 한다.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해.     

취한 나는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 그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When l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Then, l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l can be.     

(내가 우울하고 내 영혼이 매우 지쳐갈 때 / 힘듦이 밀려와 내 마음이 무거울 때 / 그땐 난 가만히 여기서 기다릴 겁니다, 조용히. / 당신이 오셔서 잠시 내 곁에 머물 때까지 /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내가 산 위에 서게 하고, 폭풍의 바다를 걷게 합니다 / 나는 강해집니다,  내가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 / 당신은 나를 일으켜, 더 잘하게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보다)     


거리 배경 색이 갈색 톤이다. 가을보다 깊은 계절이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틈틈이 그가 벗어 놓은 모자에 잔돈이 쌓인다. 그건 버스킹의 한 장치일 뿐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다. 돈이 문제가 아니지만 길 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감사를 전하고 싶은 것 같다.     


모인 이들에게 감동이 전염된다.  마지막 소절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l can be. 가 나즉막 하게 불릴 때, 벅찬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 많은 이들의 눈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것이 흘러내린다.     


우리는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것이 술만 있는 줄 안다. 아니다. 꽃향기에 취해본 적이 있나? 시에...? 영화에...? 음악에...?     

취한다는 것은 사로잡히는 거다. 아찔해하는 거다. 젖어드는 거다. 넋을 잃는 거다.     


벌써 봄은 작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노래 한 곡에 취해 흥얼거리다 눈 감고 잠들었다. 비몽사몽 중 어떤 노래 가사가 머릿속을 맴도는데 도무지 그 노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Now I need a place to hide away. (지금 나는 숨을 곳이 필요해)... 제목이 뭐지?                                   


                                           <버스킹 중인 성악가 마틴 하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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