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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n 07. 2022

혼자 놀기

아무 생각 없이

늘 그렇듯이 이른 아침에 잠이 깼다.     


오늘은 주일이라 수영장 문을 열지 않으니 황성공원이라도 걷자고 집을 나섰다. 새벽 공원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김유신 동상 계단 길을 오르고 내릴 것인지, 산책길을 몇 바퀴 돌 것인지.     


내 맘 속의 <얄팍한 내>가 속삭인다. (그냥 걷자. 계단 오르고 내리면 힘들잖아. 대충대충 하자. 한 바퀴에 960m... 3바퀴만 돌자 그래도 3km 가까이 되잖아) 모른척하고 걷는다. 3바퀴를 돌고 나서 이번 엔 <진지한 내>가 1바퀴만 더 돌자고 고집한다.     


4바퀴를 돌고 나서 <얄팍한 나>와 <진지한 내>가 옥신각신한다. 그만하자 & 한 바퀴만 더 돌자. 다리 아프다 & 한 바퀴만 더 돌면 5km 가까이 도는 거니깐 진짜 운동되는 거다.  결국은 <진지한 내>가 원하는 만큼 걸었다. 등짝에 촉촉하다. 오늘은 <진지한 내>가 이겼다.     


수영장에서도 늘 <얄팍한 나>와 <진지한 내>가 티격태격한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서너 바퀴만 돌고 가자 & 그래도 접영을 좀 해야 운동이 되지. 그러다, 30분만 하자 & 최소 한 시간은 해야지. 난, 그때마다 방관하는 척한다. 그러나 <진지한 내>가 이기길 은근히 부추긴다. 항상 성공하는 것만 아니지만.     


집으로 돌아와 샤워 후, 새 모이 같은 먹거리로 시장기를 속이고 미사를 다녀온 후, 아무 생각 없이 전에 읽었던 책들을 꺼내 들고 -이것도 일종의 랜덤인가- 침대에 엎드린다. 책은 엎드려 읽어야 제 맛이다.     


오늘은 <카르마조프 가의 형제들/토스트 에프스키> <사람의 아들/이문열> <테스/토머스 하디>다. 읽었던 책들이라 책장을 넘기 가기 빠르다. 그러다  문득 이 3권의 책은 서로 전혀 상관없는 책들이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음식에 비교한다면 고기와 야채와 국물?     



<카르~>는 고기와 같다. 연하고 질긴 부위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연한 부위 -비종교적인 묘사 등- 는 읽기가 편하고 빠르다. 그러나 질긴 부위 -대심문관 등- 는 다시 읽어도 난해하고 더디다. 이 부위를 서너 쪽 씹고 이(齒牙)가 얼얼하면  -눈이 피곤하고 논리가 꼬이면- 야채 같은 <사람~>을 펼쳐 든다.     


국내소설이라 씹기가 아삭아삭하다. 그러나 이 책도 종교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어느 부분은 꼭꼭 씹어야 한다. 특히 ‘아하스 페르츠’라는 가상의 인물이 광야에서 예수에게 3가지 유혹을 하는 부분이나 '신에게 구원받지 못할 것을 알게 된 최초의 천재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신을 만들고 불멸의 꿈을 이루었다'라는 부분은 몇 번을 곱씹게 한다.     


그렇게 몇 시간을 뒹굴다가 <테스> 같은 책은 읽는 게 아니다 그냥 마시는 거다. 따뜻한 혹은 시원한 국물처럼. 로맨스나 멜로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구수함>이 아닐까. 남성 이기주의와 사회적 인습에 천진한 시골 처녀가 도덕적 편견, 불가항력적인 운명에 지배당하고 파멸해 가는 과정의 주젠 국물 속의 우거지 정도.     


나는 이렇게 혼자 논다.     

그러다 재미없으면 캘리그래피 방식으로 글씨를 쓰던가, 기타를 치면서 딩가딩가 놀던가, 그것도 마뜩지 않으면 카메라를 들고 인근 바다로 들로 산으로 싸돌아다닌다.  이렇게 혼자 노는 게 남들 보기엔 처량해 보일지 몰라도 개인적으론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 오랜만에 내린 비로 대지가 촉촉하다 내일은 시간을 내 아무것도, 홀로 그냥 온종일 걷을 생각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어느 화가가 보내 준 그림. 홀로가 아닌 둘이다. 그러나 둘이 있더라도 홀로 일 수 있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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