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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n 02. 2022

불금의 애정행각

부기부기 부기우기 기타부기

조희창이라는 클래식 평론가가 있다. 그 바닥에서 고전음악을 쉽고 재미있게 일반인들에게 해설해 주는 전문가로 나름 유명한 전국구 강사다. 지난가을과 겨울 그리고 올 늦봄 5월까지,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그의 클래식에 관한 강의가 있었다. 그때 그가 한 말 때문이었는지 -애매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그 이후 어떤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덕에 요즘 금요일 밤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종종 그의 강의를 듣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조 강사에게 자신이 더 늙기 전에 악기 하나를 배웠으면 좋겠는 데 추천해 달라고 한단다. 그때마다 그는 ‘리코드, 오카리나, 하모니카’ 등을 권한다고 한다. 조금 어렵지만 왼쪽 손가락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있으면 기타도 괜찮다고.     


그러면 상대방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씩씩 거린단다.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는 조 강사의 추천과는 달리 이미 맘에 두고 있는 악기가 있는데. 예를 들어 우아하게 ‘플루트, 클라리네’ 아니면 그 흔한 ‘바이올린’ 같은 거. 그런데 리코드를 권하다니... (사람을 뭐로 보고 이 나이에 유치원생처럼 피리를?)     


상대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조 강사는 차마 소리 내어 말은 못 하고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단다. (우아한 건 좋지만 당신이 원하는 그 악기를 배워서 제대로 된 연주를 해 낸다는 것은, 당신의 이번 생에선 불가능할 겁니다)                                                                                                                       


그때 나도 내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피아노는  ‘솔솔라라 솔솔미...’ <학교 종>을 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맞다. 그런 나이에 나는 살고 있다. 젊은 날에 남들처럼 살아내기 위해 이것저것 관심 가는 것이 있었으나, 그냥 미루고 덮어 둔 것들. 굳이 ‘버킷 리스트’라고 거창하게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재즈 피아노 연주법을 어릴 적 친구들 어깨너머로 기웃 거리며 배웠다. 그러나 친구들과는 달리, ‘바이엘’ 한 번 배워 보지 못한 나는, 그냥 악보에 기재되어 있는 코드로 피아노 건반을 치면서 박자에 맞게 ‘쿵자쿵자, 쿵자자’ 하며 혼자 노는 정도라 사실 엉터리다. 좀 심하게 말하면 노래 부르며 젓가락 대신 피아노 건반으로 반주하는 정도? 그래도 가끔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 등을 치면서 눈물 글썽였던 아스라한 기억이 내게 남아 있다.     


기타도 직장 생활을 하느라 제대로 된 학원 강의 같은 건 생각해 여유가 없었다. 젊은 시절에 소싯적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튜닝 기를 사서 조율 후, 악보를 구해 혼자 독습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조용한 주법으로 기타를 치곤 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스트로크 주법을 익히고 아르페지오 주법을 배우는 데, 나는 역으로 학습하다 보니 스트로크 주법은 약하고 좀 더 어렵다는 아르페지오 주법을 더 익숙한, 좀 거시기한 기타 연주법과 가까이했다.     


오랜 전 어린 아들이 내가 노래 부르며 아르페지오로 주법으로 연주할 때면 -예를 들어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 같은 곡- 내 옆에서 세상 슬픈 얼굴을 하곤 했다. 그때 나는 어마 무시한 오해를 했다. (아~ 우리 아들이 이 아빠의 연주 솜씨에 감동하고 있구나) 그러나 나중에 아들이 좀 더 커서 내게 이런 말을 함으로 내 자존심을 깡그리 박살 냈다. “아빠는 왜 다른 사람처럼 신나게 기타를 치지 못해? 맨 날... 난 그때마다 아빠가 너무 불쌍해 보였어.” -(헐~) 아르페지오 주법은 스트로크 주법보다 상대적으로 처량(?)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지난 1월 초, 생애 처음으로 기타를 제대로 배워 볼 기회가 생겼다. 조 강사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 들면서 뭔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단순 욕망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스트레스 푸는 데 기타만 한 것도 없다는 게, 내 요즘 생활의 한 단면이다.     


오래된 기타(Cort) 지판을 수리, 줄을 갈았으며 가방도 사고 오래된 보면대의 먼지를 털어냈다. 난생처음 자카드 스트랩을 구해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인근 주민 자치 센터에서 강습을 받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금요일 저녁밖에 시간을 낼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운이 좋았다. 강습료는 3개월에 4만 5천 원, 좀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저렴했다.     


첫날 강사(이언하 쌤)가 선물로 수강생들에게 나눠 준 0.6mm 피크를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잡고 스트로크 주법으로 ‘다운 업’하면서 2시간 기타를 배우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놀며 즐긴다. 각종 고고, 록, 왈츠, 스윙, 칼립소..., 아르페지오 주법인 ‘p·i·m·a’로 음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뜯는 게 아니라, 마치 드럼을 치듯 스트로크 주법으로. 그러다가 이런저런 안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강약약’이 아니라 ‘강강강’으로 기타 줄을 내리치곤 한다. 스트로크는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 힘이 셌다.     


남들도 불금을 나름대로 잘 보내고 있을 것이다. 좋은 이들과 술 한 잔 혹은 영화 한 편.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1박 2일 정도로 여행... 하지만 요즘 내 삶의 불금은, 낡은 기타를 껴안고 이런 애정(?) 행각이다.     


가끔은 시답지 않고, 말같이 않은 실력으로 영화 <어거스트 러쉬>에 나오는 어린 천재 기타리스트 에반처럼 기타 몸통을 큰 북 삼아 미친 듯이 두들기기도 하면서. 이제 다 커서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이 나의 이 모습을 본다면 어린 시절처럼 불쌍한 표정으로 한마디 분명할 것이다.      

“지난 성탄절에 보고 몇 개월에 만난 울 아빠 보니, 에고~ 드디어 노망 나셨네. 이를 어쩌누”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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