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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May 15. 2022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를 꿈꾸며...

요즘 도로에서 운전하기가 녹록지 않다. 좌우에서 치고 들어오는 오토바이들 때문이다. 네거리에서도 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는 그들의 질주에 깜짝깜짝 놀라는 운전자들이 나만은 아닐 거다. 코로나 여파로 배달업이 성황을 이루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바닥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나 내 입장은 그들과 다르다.


상남자 간지적 시각 때문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이크는 ‘할리데이비슨’인데 줄여서 ‘할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신 유행의 모터사이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고전적인 오토바이로 유명하다. 45 협각의 V 트윈 엔진이 상징이라면 미국 서부 카우보이들의 힘찬 말발굽 소리가 연상되는 배기 음은 할리의 아이덴티티다. 


‘브릉부릉 다다다...’ 이 엄청난 배기 음에 할리의 마니아들은 꾸벅 죽는다. 거기에 헬멧과 선 그라스, 가죽 재킷, 부츠를 갖추고 사이드 백을 달면, 기본은 갖춘 라이더가 된다. 


내가 사는 경주에는 할리 매장이 없어서 대구 국채 보상로 인근에 위치한 매장을 찾아 큰마음먹고 구입했다. 모델은 ‘아이언 883’ 그레이 색상이다. 몇 가지 옵션과 등록비 등을 치르니 2천여만 원이 들었다. 


귀경 때는 국도를 타고 달려왔다. 나는 나중에 할리 떼거지로 몰려다니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건 민폐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산 대가대 앞에서 잠시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영천을 걸쳐 현곡으로 해서 귀가해 준비해 놓은 주차장 한 구석에 할리를 세우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벌써 길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젊은 날 잠시 바이크를 탄 적이 있었다. 대림에서 나온 ‘마그마 125’였다. 당시 국산으로는 덩치가 제일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바이크엔 애환이 서려있어 기억하기 싫지만 그래도 가끔 그 엔진 음이 환청처럼 들릴 때마다 기억이 소환되곤 한다. 살면서 가끔 불쑥 소환된 기억으로부터 우리는 아니 나는, 여전히 자유롭지가 못하다. 


가죽 재킷을 입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온 내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기겁을 한다.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군!!!)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씩 웃어주고 엄지 척을 했다.


그 순간 핸드폰 알람이 진저리를 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휴일 새벽이었고 꿈이었다. 얼마나 핼리를 소망했으면 꿈까지 꿀까? 


몇 해 전 가족들과 외식 중 넌지시 밑밥을 깐 적이 있었다. 일단 깔아 반응을 보고 일을 저질러도 저지를 생각에서다. “나, 할리데이비슨 한 대 살까 하는데...” 그러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의 표정은 황당해했으며 딸과 아들은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올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내 말을 뿌리 채 잘라 버렸다. 


딸이 먼저 말했다. “아빠가 오토바이 사시는 그날, 우리는 집 나가 살 거예욧!” 아들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아주아주 신중히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주아주 신중하게 소맥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오래전 기억이다.


완전히 잠에서 깬 나는 주스 한잔을 마시고 방금 전 할리의 배기 음을 입으로 소리 내어 보았다. 그러자 10 수년 전 소녀시대라는 그룹이 부른 노랫말이 머리를 스쳤다. [심장소리 같은 떨림의 할리에 네 몸을 맡겨 봐♪♬♩ 


원래 읽을 책이 있어 토막잠을 자고 모닝콜의 힘을 빌려 새벽에 일어 난 건데, 책의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유튜브에서 할리 동영상 등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해야만 했다. 못다 잔 새벽잠을 다시 자기 전에 카톡 프로필에 할리 사진 한 장을 걸어 놓고 흐뭇해했다. 


그리고 서너 시간 더 자고 늦은 아침에 일어 나 보니 카톡에 몇 개의 글이 올라 와 있었다. 이상한 일은 그 글 중에 아들이 보내온 글이 있었다. 평소 아빠한테 카톡을 보내는 일이 드문 일이었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웬일일까? 아들이 보내온 글은 다음과 같았다. 


[오토바이 사진 뭔교~?] 헐... 아들이 이른 새벽에 내 카톡 프사를 본 것이다. 그때 몇 해 전 아이들이 내게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까치발로 조용히 아들 방으로 가서 아들이 가출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핼리 사진을 삭제할까 하다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산 것도 아니고,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진만 올린 건데. 


핼리를 사서 내가 나쁜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젊은 애들처럼 스피드에 살고 스피드에 죽겠다고 목숨을 걸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출을 받아서 살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물론 안다. 가족들이 왜 내가 핼리를 못 사게 하는지. 


세상 일이 그런 것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그래도 사진은 며칠 간직하고 싶다. 아직 나는, 바람을 가르며 미지의 세계로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브릉부릉 다다다...’ 할리의 배기 음을 뿜으면서 말이다.     

(할리데이비슨 아이언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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