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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n 10. 2022

쪽 팔리게 살지 말자

개판인가, 게판인가?

그때 나는, 겉으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냥 마트에서 사 먹으면 될 걸, 뭐 저리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몇 해 전에 이사 온 집은, 법적으로 확보해야 할 화단이 두 세평 정도 있어야 했다. 첫 해에는 조경수로 이것저것 심었는데, 올봄에는 그 틈 사이에 아내가 고추를 심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여섯 포기나... ㅠ     

매운 고추만 있으면 찬 물에 밥 말아먹는 것이라도 싫어하지 않는 내 식성에 대한, 아내의 배려가 고맙기는 했지만 평소 게으른 나는  마뜩잖았다.  (비 안 오면 물 줘야 되고, 잡초도 뽑아 줘야 하고, 때 되면 고추 따야 되고... 근데 고추가 열리기나 할까?)   


진짜 손바닥만 한, 땅 떼기를 보고 구시렁구시렁대면서 내 한숨은 길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밥상에 고추가 가득 올라왔다. 놀란 내게, 아내는 우리가 아니, 아내가 키운 그 고추라는 것이다.     


그 후 나는 틈나는 대로 화단에서 고추를 땄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삼사일에 한 번씩 두 손 가득 고추를 딸 땐 횡재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이 참에 제대로 배워 땅도 좀 사고... 퇴직하면 고추 농사라 지어볼까?) 그때 갑자기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했다.     


아버지...     

30여 년 전. 서울 이층 집 옥상에 아버지는 흙을 퍼 올려 텃밭을 만드셨다. 한 열 평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일 아침 달그락달그락 텃밭 손질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이불속으로 머리를 쳐 박고 자는 척했다. 그러나 결국은 마지못해 일어 나, 건성으로 일손을 거들곤 했다. 그런 내 상투적인 모습에 아버지는 한 번도 날 타박하지 않으셨다.   

  

당신은 알고 계셨을까? 그런 소소한 기쁨을. 언젠가는 당신 아들이 알 때가 올 것이니, 굳이 다그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알 것이라는 것을.   


세월이 흘러 요즘 그 아들의 아들에게 고민이 많은 듯하다. 다가 올 자신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함들. 대학생활이니 장래 직업이니 심지어 여드름 까지... 그런 아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내 아버지처럼 아들을 방목(?)해서 키우는 것 같다.     


서울 모대학 실용음악과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가끔 선심(?) 쓰는 척하며 경주로 내려오면 나는, 그냥 웃어 주기만 한다. 대학 졸업 후, 원하는 일을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참된 신앙인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속으로만 하는 생각일 뿐. 난 아들에게 쿨하게 말한다.  “어이, 아들 하고 싶은 하고 살아... 대신 우리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                                  



오늘. 살아가면서 무엇이 쪽 팔림인지, 언젠가 내게 묻던 아들에게 이 글을 쓴다.


To. 아들     

몇 해 전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밥 딜런이라는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가수가 수상했어. 너에게 아주 낯선 사람이겠지만 아빤 세대에게 반전(反戰) 운동의 기수이며 포크 록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사람으로 유명하지.     


그즘 우리의 고은 시인이 물망에 올랐었고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유력한 후보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미국의 대중 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탄 거야. 아빠도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단다.     


그런데 그때 인터넷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벨 문학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니 가관이었어. 세계적인 상이니 수상 결과에 따라 사람마다 이해타산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누군가 이런 독설을 날렸지.  


문학과 음악을 전혀 다른 것이다. 딜런은 진정한 라이터(작가)가 아니라, 싱어 송 라이터다. 이제 우리 작가들은, 펜 대신 기타를 배워야 하나? 히피의 썩은 내 나는, 전립선에서 짜낸 노스탤지어 상(賞)이다.        


내가 그 기사를 보고 궁금한 것은 왜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원고지 등에 쓰여 <책>으로 만들어진 것만이 진정성이 있고, 아무리 좋은 시나 글이라도 대중들의 <악보>에 옮겨지면 하찮은 것이라고 여기고 눈을 내리 까는 걸까?     


아빤 진정한 작가에게는, 문학상보다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라고 생각해. 상은 탈 수 있으면 좋지만 못 탄다 해도, 형식적인 상에 너무 연연하는 건 작가로서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     


아들!

딜런이 대중가수이기 때문에 고귀한(?) 노벨상을 탈 자격이 애초부터 없다고 단정 짓고 있는, 저 사람들이 쪽 팔린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 들어 본 적이 있지 '현상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라는.


소탐대실이라는 말도 있지. 아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작은 것에 기웃거리고 쪼잔하게 굴면, 놓치지 말아야 할 큰 것을 놓치는 일이 종종 있다는 말. (그래... 아빠 경험이다. ㅠㅠㅠ)     


나라 안이나 밖에서나, 한 가닥 한다는 그 잘난 사람들이 저 잘났다고 설쳐 되고 있는 요즘. 도무지 염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언행으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얼굴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시침이 뚝 떼고 있는, 그들이 매일 뉴스 시간을 도배할 때 아주아주 고함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이 누군지 이름을 여기에 쓰는 것도 짜증이 나서 쓰지 않겠다. 그래도 아들은 알지 그들이 누군지?)     


“아~ 쪽 팔린다”      


                                            (개판이 아니라 게판... 울진 새벽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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