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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11. 2022

왜  슬픔 예감은 틀리지...

애인 같은 산

며칠 전 지독하게 무료하던 어느 날. 서재를 정리하다가 아주 오래된 낡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괴테 作)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책장을 넘기다 말고 줄 쳐진 한 대목에서 가슴이 뻣뻣해졌다. 그 젊은 날 내가 왜 이 대목에 줄을 그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깨우느뇨?/ 봄바람이여! 그대는 나를 유혹하면서/ '나는 천상의 물방울로 적시노라.' 라고 하누나/ 허나 나 또한 여위고 시들 때가 가까웠노라/ 내 잎사귀를 휘몰아 떨어뜨릴 비바람도/ 이제 가까웠느니라/ 그 언젠가 내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던 나그네가 내일 찾아오리라/ 그는 들판에서 내 모습을 찾겠지만 끝내 나를 찾아내지는 못하리라>    <샤 롯데가 베르테르에게 읽어 달라고 했던 오시안의 詩>


그 시를 읊조리다가 떠오르는 사실 하나. 내겐 애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니를 보지 못한 지 오래됐다. 몇 해 전 휴가 차 하동에 갔지만 그니를 만나지 못했다. 십리 벚꽃 길을 몇 번 오르고 내리면서도 힐끗힐끗 먼발치서 바라만 보고 돌아왔다. 지난해 인근에 있는 삼성궁을 찾았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그니를 처음 만난 건 아주 아주 오랜 전일이다. 내  나이 20대 초반이었던 8월 어느 뜨거웠던 날. 나는 서울역에서 그니를 만날 설레는 맘에, 늦은 저녁 대신 생맥주를 벌컥벌컥 3천 CC나 마셨고, 자정 가까운 시각에 전남 구례구역으로 출발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잠시 눈이라도 붙일 수도 없는 입석이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이른 새벽에 도착했다. 화엄사로 가는 첫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대합실 간이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잠시 회상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그 전날부터 그 다음날 새벽까지 그니를 볼 생각에 거의 20여 시간 잠을 자지 못했고, 먹거리도 전날 밤에 마신 적지 않게 마신 맥주가 전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니를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사진으로만 보고 말로만 들었을 뿐.


그 역 그 의자에 앉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슨 그리움이 나를 일으켜 세워 그니에게 향하게 하는 걸까.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그것이 연민이 되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참아내지는 못하는 기침이 되었다. 얼마 후, 해가 뜨자 그 그리움이란 놈이 길을 재촉했다.


화엄사를 지나 코재(코가 땅에 닿을 듯한 급경사의 고개)를 진저리 치듯 넘고 원추리꽃을 비롯한 동자꽃, 잔대, 모싯대 등 야생화가 만발한 하늘정원 노고단에선 잠시 숨만 돌리고 서둘렀다. 화개재, 연화천, 벽소령, 선비샘, 거기 어디선가 텐트에서 새우잠을 잤고, 30리가 넘는 드넓은 평원으로 남녘 최대의 고원인 세석평전을 바람처럼 달려, 장터목에 이르렀다.


그리고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 이병주의 <지리산>, 이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수증기로 머리를 헤쳐 풀고 이 앞에서 농운(濃雲)되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 모두 그니 앞에 숨죽이고 있었다.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三神山)이라고 한다. 이 산 중에 백두산의 맥이 백두대간을 타고 흘러 왔다고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리는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1915m) 정상석 앞에 나는 섰지만 그니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감히 올려다볼 엄두도 못 냈다.


이곳에서는 흔한 꽃이라면 피지도 않을 것이고, 흔한 바람이라면 불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흔한 그리움이라면 그 먼 날 추억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아니 한참을 머물고  중봉을 걸쳐 대원사로 하산하며 뒤돌아 보고, 입안 소리로 여운을 남기며 말했다.


                                           내, 그대를 만나러 꼭 다시 돌아오리라!


한 산을 넘고 또 한 산을 넘었다. 온몸으로 산과 숲의 속살을 봤다. 그러다 산딸기 가득한 산길을 내려오면서 불현듯 다시 그니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고아하고 서늘한 슬픈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런 슬픔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일까. 그날 이후 나는 천왕봉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아마 이번 생에선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만큼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그니가 귀한 줄 모르고, 소중한지 모르고,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한 살을 먹고 또 한 살을 먹었다. 온몸이 베르트르가 읽어 주던 오시안의 시처럼 여위고 시들 때가 가까이 옮을 안다. 다시는 그니를 볼 수 없는 거다. 그러나 혹 다시 보게 되면 나는 늙어가는 게 아니고 익어 가는 중이라고 말할 거다. 이렇게 귀띔하면서.


"사람들은 보통 계절을 넷으로 구분해. 하지만 열매 맺는 여름과 거두는 가을, 그 사이에는 <장하 長夏>라고 부르는 계절이 있어서, 사실은 다섯 계절로 구분해야 맞아. 장하를 제대로 거친 열매는 아름답고 맛있지. 지금 장하의 시절을 산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그대를 애틋해하는 나의 인생도, 아름다워지고 있다고 생각해. 장하는 사람을 늙게 하지 않고 성장과 성숙을 함께 버무려 잘 익게 해. 그러나 지금 날 아프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다시는 그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야. 혹 본다 해도 기다림에 지쳐서, 그리움에 사무쳐서, 미움이 켭켭이 쌓여서, 날 받아 주지 않을 것 같아. 그것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해..."

-소설 <토지> 등장인물도. 중앙 한복 입고  있는 이가 주인공 최서희다- (얼마 전 지리산 자락 하동 박경리 문학관에서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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