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새, 꿩, 원앙새, 청둥오리 등 이 새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암컷은 칙칙하고 수컷은 화려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암컷에 비해 상대적이긴 하지만- 긴 갈기를 가진 수사자, 멋진 뿔을 가진 수사슴, 자기 몸통만 한 큰 집게발로 위엄을 자랑하는 수컷 농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주위의 여성들이 화장하는 이유도, 동물의 암컷들처럼 칙칙해서... ㅋㅋㅋ 칙칙하기로 따진다면 꽃미남으로 태어나지 못한, 대부분의 남성들이 더 꼬질 하다. 화장을 해도 남자가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세안 후, 밀크로션은 고사하고 스킨로션 바르는 것조차도 귀찮아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남성 화장의 역사는 오래된 팩트다. 프랑스 절대왕정 시절, 루이 14세를 비롯한 왕족, 귀족들 역시 화장을 했다는 문헌에 따르면 남성 화장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먼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런 유례가 있다. 바로 신라의 화랑들로부터다. 물론 화랑들이 화장을 한 이유가, 자신 없는 부분을 감추고 예쁜 곳을 두드러지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부하 낭도들을 잘 이끌기 위해, 권위적인 차원에서 화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남성 화장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이 글을 읽는 분이 여성이라면, 옆에 있는 짝지에게 아래 붉은 단어들에 대해 물어보기 바란다.
그루밍족 (Grooming, -族)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남성이라면 그는 폭넓은 상식의 소유자다. 그루밍족의 뜻은 패션과 미용에 돈이든 뭐든 많이 투자하는 남성을 일컫는 신조어인데,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을 시키는 데에서 유래한다.
화장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뜻의 화섹남이 무슨 말인지 안다면, 그는 굉장히 센스 있고 세련되고 위트 있는 스타일리스트다. 아무리 남성이라도 그냥 민낯이 아니라, 내추럴함 보다는 조금 더 꾸민 듯 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일 BB크림 (Beauty Blam Cream의 약자)의 용도를 알고 그것을 애용하는 짝지라면, 대박이다. 1950년대 독일에서 만들어진 비비크림은 애초 레이저 치료 후, 상처를 빨리 회복시키고, 밝은 색으로 커버할 용도로 개발되었으나 요즘은 잡티나 홍조를 감추고 자외선을 차단용으로 사용된다. 이런 걸 알고, 사용하는 남성이라면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 판단의 기준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힘 -
가끔 속옷을 별도로 가지고 가기도 하지만, 목욕탕을 가는 남성들은 대게 빈손이다. 여탕과 달리 남탕은 때밀이 수건, 비누, 마른 수건 등 웬만한 것은 다 비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 수영 샤워실은 그렇지 않다. 달랑 비누 하나밖에 없다. 수영 후 대부분 사람들은 바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각자가 세면도구부터 시작해 마른 수건 그리고 각종 화장품(염소 소독 성분의 수영장 물 때문) 기타 등등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짐이 한 바구니다.
이런 곳의 벌거벗은 사내들은 집에서 보다도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다. 노년의 관심은 탈모다. 그동안 좋다는 샴푸, 연고, 약 다 해봤지만 방법이 없다며 서로 투덜거린다. 중년들은 주름제거에 좋다는 크림을 서로 소개하고 바른다. 사후약방문 격이다. 그래도 그 정성이 대단하다.
좀 젊은 측에 속하는 이들은 기본 화장(?) 후 BB크림으로 마무리한다. 그래야 얼굴이 뽀샤시 해지고 사진 빨도 잘 받는다고 자기들끼리 키득거린다. 새벽마다 탈의실 거울 앞에서 <서당개~> 식으로 수년간 귀동냥 한 말들이다. 확실한 건 전에 비해 요즘 화장하는 남자가 많아졌다는 거다.
여자나 남자나 예쁘게 혹은 멋지게 보이려고 화장하는 것을 탓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화장은? 그루밍족이니 화섹남이니 BB크림이니 해도, 결론은<웃음>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나이를 먹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웃음이 적어진다고 한다. 그만큼 생각이 복잡해지고 걱정거리들이 많다는 뜻 일거다. 웃음은 현재 심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신감의 표현이고 승자의 표정이며, 건강의 상징이고, 행복의 표현이다.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라는 말이 예사롭지가 않다.
내 주위에 웃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타고났다. 그러나 웃음이 자연스럽지 못한 사람도 많다. 얼마 전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지으라는 요구에 눈 따로, 입 따로 어색하게 표정 지어 핀잔을 받은 내가,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