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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07. 2022

<처음처럼>

소주 이야기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쇠귀 신영복


<처음처럼>을 좋아한다. 맞다. 소주 이름이다. 소주도 좋아하지만 그 글씨체를 더 좋아한다. 그 글씨체는 고딕체, 명조체, 궁서체처럼 일명 ‘신영복체’, 혹은 그의 아호가 쇠귀라 '쇠귀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신영복이 만든 글씨체라서 그렇다. 오늘은 단지 <사상 혹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한 인간을 수 십 년씩 감옥에 가뒀던, 지난 정권들의 ‘야만성’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신영복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러다가 1968년 장교로 복무하면서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재직 중,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렇게 20년간 복역하고 1988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27살에 들어가 47살에 감옥 문을 나선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담론>이라는 책 등을 쓴 작가로도 유명했던 그는, 타계하기 전까지 25년간 성공회대학교 교수이기도 했다.



그 긴 감옥살이 중, 추사 김정희의 정통을 이어받은 서예가로 유명한 정향 조병호로부터 옥중에서 붓글씨를 사사하였다. 거기에 어머니의 모필 서한에서 느껴지는 서민적 체취와 정서를 독특한 서풍에 담아낸 글씨체가 신영복체다.


가수 윤도현의 노래 제목, 조정래의 소설 <한강>, 교보문고 신용호 회장의 어록 제목, 문재인 대통령의 슬로건이었던 <사람이 먼저다>가 그의 글씨체로 쓰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6년 초. 신제품 소주 네이밍 (이름 짓기)에 고심하던 두산주류 측에서 조심스럽게 신영복이 쓴 ‘처음처럼’을 소주명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런데 애당초 우려와는 달리 신영복은 “서민의 애환을 함께하는 소주에 나의 작품이 쓰이면 영광이다”며 사용을 허락했다.


그리고 단지 네 글자로 저작료를 받을 수 없다고 그가 한사코 고사하자, 두산 측은 1억 원을 성공회대학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그리고 그의 타계 1주기를 앞둔 2016년 12월 21일부터 신영복체는 평소 그의 유지를 받들어, 개인 사용자에 한하여 무상으로 배포되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지만 신영복은 우리들에게 귀한 글씨체를 남겼다. 사실 글씨체로만, 그를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십수 년 전부터 나는 서예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모 대학 평생 교육원에서 한 학기 수강을 한 경험도 있다. 그런데 지루했다. 단순히 글자를 반복해서 쓰다 보니 밋밋했다. 붓을 잡는 법과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것 등도 나에겐 진부했다.


점과 선, 획 및 태세, 장단, 강약 등과 먹의 농담 등 다양한 요소가 혼연일체가 된다면 훌륭한 조형미가 담긴 붓글씨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요원한 문제였다. 집중력과 인내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캘리그래피였다.


캘리는 다양한 분야에 응용이 가능하고 쉽고 재밌는 장점이 있었다. 글씨의 가로획과 세로획이 연결되어 머리끝에서 만나고 허리춤에서 연결되기도 한다. 가끔 웃음 가득한 동그란 얼굴로 만나기도 하고, 삐친 듯 빗겨 나가기도 하지만 서로가 제 위치에서 역할을 하며 아름다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캘리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시간이었다. 직장과 취미와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캘리 교습과 시간 맞추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가 그쯤 몇 해 전 몇 년 동안 공부해 오던 것 한 가지를 내려놓고, 캘리에 입문했다. 그 결정은 그 당시 내가 내린 여러 결심 중에서 가장 잘한 행동이었다.


임서(臨書)라는 말이 있다. 잘 쓴 글씨를 옆에 두고 보면서 따라 써보는 것을 말한다. <신영복체나 캘리를 지도해 주는 강사의 글씨체>가 내 택스트였다. 아직 택도 없는 무리고 고통(?)이 뒤 따르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글씨체를 만난 날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수영도 그랬고 사진도 그랬다. 처음에는 뭐든 서툴지만 내가 좋아하고 즐기고 자주 하다 보면 어느 듯 체화(體化)되어 즉, 몸에 배어 내 것이 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기에, 나는 그때마다 나름 행복했다.


세상에는 길을 몰라 못 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가시밭 길, 진흙탕 길, 자갈길을 피하다 보니 못 가는 것이라고 한다. 몇 년 후 나는 또 어떤 길을 걷고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확실한 것은 분명 어떤 새로운 길을, 또 걷고 있을 것이라는 거다.


蛇足>

Q : '신영복체'는 서예인가? 텔리 그라피인가?


A : 서예 쪽에선 전통적인 필법에서 벗어나면 이단아 취급을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서예가 아니다. 신영복체는 붓과 글체가 만나 이루어진 독특한 서체다. 굳이 구분한다며 캘리그래피에 가깝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 것은 신영복의 삶과 말이, 얼마나 치열하고 깊이, 그 글씨체에 아로새겨 있는지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신영복체는 한갓 흔한 서체 중에 하나로 취급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골라 마시는 묘미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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