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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13. 2022

시인 안도현과 연탄재

백석을 또 만나다

10 수년 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라는 시구(詩句)로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한 이가 안도현 시인이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한겨레 신문에 시인이 <시와 연예하는 법>을 연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문제의 연탄재가 나오는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로 그의 독자가 된 나는, 그 연재물을 몇 달에 걸쳐 스크랩해 지금도 가지고 있다. 이 시 때문에 시인은 '별의 시인 윤동주, 국화 시인 서정주'처럼 '연탄재 시인'으로 불린다. 폼(?)은 좀 나지 않아도 시인이 쓴 '불만은 없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부터 시작해 ‘26. 시를 완성했거든 시로부터 떠나라’까지. 장장 26회 분이다.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에 관한 -책이 아닌- 유일한 스크랩북이다.


그러던 중 몇 해 전 가을밤 문턱 대학원 특강 때 나는 처음으로 시인과 대면했다. 게다가 강의 중에 백석을 사이에 둔, 만남은 묘한 감흥마저 일으켰다.


시인은 백석을 만나본 적도 없지만 자신의  '시(詩) 사부(師父)' 임을 고백했다. 백석에게서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그의 시를 베끼고 싶다고까지 했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에 있어>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시구를,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제목으로 도용(?)했다고도 밝혔다. 시인에게 백석은 한용운의 ‘님’과 같은 존재다.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날 시인의 강의 때 엉겁결에  강단에 올라가게 된 나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낭송하게 되었다. ‘출출이’(뱁새)와 ‘마가리’(오막살이), ‘고조곤히’(고요히)는 평안도 사투리라, 천천히 나름대로 시 맛을 살려 읽었다.


낭송 후 느닷없이 시인이 내게, 백석을 아냐고 물었다. 백석은 한 때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인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혹? 하는 마음에서 물었던 것 같다. 아니면 시를 제대로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이렇게 잘난 척하고 싶지 않다. ㅠ)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는 이상화의 마돈나처럼 우리 문학의 베아트리체다. 나타샤… 그녀가 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이라고도 한다. 설사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정지용의 처절한 <그리움>, 김영한의 지고지순한 <순정>, 백석이 사랑하기 때문에 눈이 ‘푹푹’ 내린다고 노래한, 그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인 아니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 애절케 하는. 긴 겨울의 끝자락이다. 흰 눈은 안 내리고, 흰 당나귀도 없지만, 나는 이 한밤중에 흰색 소주를 마시며 백석의 시를 다시 찬찬히 읊조려 본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시인의 호기 찬 말을 아련해한다. 나는 독한 흰 소주를 스스로에게 가득 부으며 살며시 속삭여 본다.

                   “인생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나머지는 모두 배경일뿐이다”

                                                                                         -2013년 2월 22일 성당 카페에서-


그 몇 해 전 늦겨울, 나는 백석에 관한 글을 성당 카페에 올린 적이 있다. 백석에 관한 이야기라면 나도 할 말이 많다. 그날 시인의 뜻밖의 질문에 물고기가 된 나는 물을 만났다. 그렇게 백석 보따리를 풀다가 말고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내가 아니라 시인 안도현의 특강 시간인데... 물을 흐릴 뻔했다. 짧게 할 말만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자 시인이 백석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푹푹 눈이 내린다고?, 눈이 내려서 사랑하는 이가 보고 싶은 게 아니고? 이 말도 안 되는 구절 때문에 나는 백석을 좋아합니다. 분명히 문장 구조의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충돌이거나 모순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우주에 눈이 내린다.니!... 그리하여 나는 가난하고, 너는 아름답다는 단순한 형용조차 찬란해집니다>


어디선가 시인이 쓴 글이 기억이 났다. “우리는 백석처럼 시를 쓸 재주가 없다. 그래도 제발,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라는 식의 말은 하지 말자. 너무 상투적이다. 그건 1930년대에 이미 죽은 문장이다.나는 시인의 말에 고개 끄덕이며 이렇게 중얼거려 본다.


                                                     (그게 어디 시구뿐이겠는가?)


<왼쪽 서 있는 이가 안도현 시인이다. 우측에 서서 한 마디 하고 있는 사내가 나다. 그날 참...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내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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