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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철 Francis Jul 19. 2022

더덕과 불고기 그리고 땅콩과 술맛

결국 술 이야기

방금 전,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평상시처럼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건 먹은 게 아니라 그냥 흘낏 쳐다보고 만 거다. 반찬이 시원찮아서가 아니다. 이제 습관이 되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글 한편 쓰는 것으로, 밥 대신할 생각에 자판을 두드린다.


평일 새벽 운동 후, 조식은 주로 선식을 탄 두유 한 컵에 계란 프라이가 전부다. 간혹 한 두 숟가락 정도의 탄수화물을 국에 말아먹기도 하지만, 그것도 언제부턴가 부담스러워 되도록이면 피하고 있다. 아침 식사로 탄수화물이 부담스럽다면, 인생 살만큼 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말에는 가급적 밥 한 끼 제대로 먹으려고 노력한다. 어제 아침엔 생각지도 않은 반찬이 밥상에 올라왔다. 더덕이다. 보는 순간 맛있겠다는 생각에 앞서, 참 맛깔스럽게 생겼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맛있다와 맛깔스럽다는 유사한 의미인데, 왜 그 표현이 먼저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더덕을 맨입으로 먹어 보니 식감이 부드럽고 씹으면 씹을수록 독특한 향내가 풍겼다. 한자 성어 동가홍상(同價紅裳-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말이라는 시간적 여유도 한몫한 탓이리라.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이런 유사한 경험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얼마 전 경주 시내에 있는 나름 유명하다는 코다리 냉면집에 냉면을 먹으러 갔다가, 옆 테이블에서 이 식당 서브메뉴인 불고기를 보고 갑자기 든 생각이다. 먹어 보지 않았지만  달짝지근하게 맛있어 보였다.


전에 먹어봤던 기억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집안 어른 생신 상에서. 중학교 졸업식 날 종로 한일관이라는 불고기 전문 식당에서. 불고기는 나이 들어 먹어 본 닭갈비, 쭈삼(주꾸미 삼겹살), 오삼(오징어 삼겹살)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추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맛을 느낄 수 있는 잔흔이 있다.


보는 것과 달리 먹어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최근 땅콩 에피소드가 그렇다. 황성 5일장에서 만난 군 땅콩은 색상이 엷다. 표면이 거칠고 입자가 짙다. 그런데 맛이 고소하다 게다가 단맛이 난다. 맛난 맛의 동의어는 행복이다. 땅콩이 날 행복하게 했다. 파는 이가 국내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맛있었나 보다.


땅콩은 내게 평상시 킬링타임용 간식이고 가벼운 술안주다. 그래서 장이 설 때마다 가끔 사다가 며칠 일용할 먹거리로 애용한다. 그런데 지난 장에서 땅콩을 사지 못했다. 며칠 동안 입이 궁금해하던  나는, 다음 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동네 방앗간에서 땅콩을 샀다. 분명 국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텁텁하고 쓰다. 2% 아니 20%가 부족했다. 사람의 혀는 단, 짠, 쓴, 신맛을 느끼는 부분이 모두 다르다. 고소한 맛은 정확히 말해서 맛이 아니라 냄새다. 고소한 냄새를 코로 느껴, 뇌에 전달하는 거다. 전에 먹던 땅콩은 그 고소한 냄새에, 혀로 단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방앗간에서 산  땅콩은 그렇지 못했다.


5일장을 기다리지 못한 조급함이 부른 작은 참사(?)다. 먹자니 그렇고 버리자니 아깝다. 그래도 중국산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버릴 생각은 없다. 그래서 그다음 장날에 땅콩을 사러 가지 않았다.  방앗간 땅콩을 마저 다 먹어야... 안주가 나오니 자연스럽게 술 이야기가, 술맛이 뒤를 잇는다. 술도 눈만으론 모른다. 마셔봐야 맛을 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느끼는 기분, 음식을 혀에 댈 때에 느끼는 감각, 그것들이 어우러져 제격이 될 때 느껴지는 만족감을 우리는 맛이라고 부른다. 음식처럼 에도 술맛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술맛은 굉장히 복합적인 맛을 동반한다.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거다.


그 맛이 궁금하면 오늘 저녁 혼술이라도 하면서 천천히 느껴보기 바란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술이든 한 모금 입에 담고 눈을 감아 보라. 그러며 낯선 사람의 향, 지인의 안부, 사랑, 이별, 환희, 고통...  등등 많은 것들이 다가온다. 만일 이런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냥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취하는 게 좋다.


성경에도 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술을 알맞게 마시면 사람에게 생기를 준다. 술 없는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술은 처음부터 을 위해 창조되었다>                                                                                                         집회서 31장 27절

문제는 현실적으로 술 한 잔 마시면서, 한숨을 쉬거나 청승을 떨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


더덕과 불고기 그리고 땅콩과 술, 맛... 돌이켜 보니 지난 삶 속에서도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꼭 맛을(겪어)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그것들은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오늘은 음력으로 내 생일이다. 그동안의 내 삶에서 있어서, 가장 긴 격정적인 반년을 넘겼다. 아주 길고 긴...

    

 <곶감이 맛있다는 건 겨울이 깊었다는 거다> - 한 여름에 문득 떠오른 경산 인근의 지금은 이름을 잊은 어느 산사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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