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건천에 있는 유명한 소고기 전문 식당에서 가족모임이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빠질 수 없는 자리라 참석을해야만 했다. 평소 심심치 않게 소고기를 즐기던 나였지만 그날따라 심신이 여의치 않으니 고기가 내키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20명분 이상의 안심과 등심만 구워냈다.
사실 그날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통, 먹거리와 사이가 좋지 않다. 딱 한 종류 (바지락, 들깨, 미생이, 감자, 버섯, 부추, 얼큰이, 닭... 등) <칼국수>만 빼고.
오늘 점심시간. 회사 구내식당에 들어서니 낯익은 냄새가 난다. 그래, 오늘은 수요일이라 분식이 나오는 날이다. 잔치국수, 칼국수, 자장면, 냉면... 등등 계절마다 메뉴가 다르지만 보통은 잔치국수가 대세다. 그렇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칼국수다. 그것도 회사 직원들 사이에선 나름 유명한 <부추 칼국수>.
이 칼국수는 정말 그 흔한 호박이니 감자니 하는 것들을 안 넣고 오직 부추만 넣고 끓인다. 육수는 해물 다시다인 듯. 젓가락으로 휙휙 돌려 한 입 가득 담고 있을 땐, -면치기는 기본이다- 요즘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세상 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걸까.
평소 아침은 별일 없으면 선식으로 때우고, 점심은 보통 큰 한 숟가락으로 정도의 탄수화물(밥)이 전부다. 반찬은 이것저것 깨작깨작. 저녁엔 가벼운 술 한 잔에 안주 조금.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가난하고 빈약하고 영양가 별로 없는 먹거리 앞에서 시장기를 못 느낀다는 게 더 스트레스다.
하지만 스스로 호사하는 날도 있다. 특정한 칼국수 집을 일부러 찾아가는 것이다. 오직 나만을 위하여. 그곳에서 한 끼로 하루 세끼를 한꺼번에 다 해결하기도 한다. 의 좋으신 자매님이 운영하시는 황성 칼국수 집.
각종 야채 (계절마다 다름. 호박, 감자, 고구마...)를 넣고 끓이는 이 집의 장점은 특정한 어떤 맛이 아니라, 구수하게 어우러진 묘한 맛을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칼국수는 특별한 이름이 앞에 붙는 칼국수가 아니라 그냥 칼국수라고 불린다. 그 흔한 만두니, 계절 음식인 냉콩국수니 그런 건 없다. 음료수도 물론 소주도 없다. 오직 칼국수만 있다. 가격은 5천 원, 가격이 착하다.
면도 시장에서 사 오는 게 아니라 주인 자매가 직접 반죽해 손님이 올 때마다 그때그때 썰어 삼아낸다. 갓 담근 김치는 무한 리필은 아니지만 테이블마다 작은 단지에 가득 줌으로 모자라지 않는다.
(단골이라고 가끔 다른 테이블과는 달리 구수한 흑미 밥도, 후식으로 작은 접시에 과일도 슬쩍 갔다 주기도...)
이 집을 홍보하고자 하는 흑심은 전혀 없다. 이것보다 못한 먹거리들을, 시내 식당가에서 1만 원 가까운 가격으로 팔고 있다는 것이, 그 바가지 씌우는 상술이 안타까울 뿐.
오늘 점심 부추 칼국수 한 그릇에 수다가 길었다. (하루 열 마디도 안 하고 사니 글이라도...ㅠㅠㅠ) 주일에는 절대 장사(?)를 하지 않기에 직장인들은 토요일이나 가능하다. 이른 점심이든, 늦은 점심이든 이번 주말에는 꼭 다시 한번 가서 배불 떼기가 되어 보고 싶다.
가끔 식사 후 그 집 마당에 있는 화단에서 키운 작은 생화 화분 선물을 몇 번 받았다. 맛난 칼국수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그래서 가지고 있던 꽃 사진 하나 액자에 넣어 선물했더니 식당 벽에 걸어 났다.
그런데... 이 식당이 얼마 전 폐업을 했다. 장사가 안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매님들 건강이 좋지 않아서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내 기억에서만 존재하는 추억의 칼국수 집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