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철 Francis Jul 24. 2022

오만과 편견에서  중용과 타협으로

말과 밥이 적기를 기도

오래전 기억하나를 서랍에서 꺼냈다. 어느 날 지인이 저녁을 초대해 몇 식구들이 모였다. 먼 남원에서 추어탕을 구해와 마련한 자리다. 진하고 맛깔난 탕도 탕이었지만 그 정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식사 후, 커피까지 직접 내려 바리스타로서의 솜씨를 보였고, 그 집에 있는 양주를 비롯해 술이란 술은 다 바닥을 냈다. 그러나 이날 백미(白眉)는 다섯 시간 넘게 오간 이야기 중에 나온 그의 경험담 중에 한 <에피소드>였다.


“저소득층 가정으로 의료봉사를 갔을 때 일이다. 한 사람이 등이 계속 가렵다고 하소연하기에, 매일 샤워 후 보습제를 꼭 발라주면 효과를 있을 거라는 처방을 해 주었다. 그런데 며칠 전 내가 참 우답(遇答)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은 보습제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씻지 못해서, 씻을 형편이 되지 못해 가려운 것이었는데, 내 수준의 잣대로 그런 처방을 한 것이다. 참,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그때 난 문득 프랑스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빵을 달라는 굶주린 군중들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냐?”라고 말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도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도 함께.


내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견고한 성(城)이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이라는 돌들로 세워진. 수직적 관계를 지향하는 우도, 그렇다고 수평적 관계를 선호하는 좌도 아닌. 이로 인해 생기는 트러블은 늘 스스로 우월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각을 세우게 만든다. 이런 나는,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가 짜증이 나 투덜거리다가 자주,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는다. "그 사람들도 다 이유나 사정이 있지 않겠어요?" 그럼 나는 또 내 편이 안 되어 주는 아내에게 심술스러운 눈총을 보내곤 했다.


내가 읽고 만나고 눈물지며 고민하고 다짐한 것만이 옳다는 생각. 이런 것도 있는데 왜 그 사람들은 이런 옳은(?) 생각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현상 뒤 구조에 대해서 왜 관심이 없는 걸까라는 등의 나만의 오만과 편견. 이날 그 에피소드 때문에 나의 독고다이(?)식 아집에 스크래치가 났다. 맘이 아리다. 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날 내가 대접받은 식사와 커피 그리고 술은 애피타이저였고 호스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에피소드가 메인이었고 죽비(竹篦)였다. 작은 바람으로 인한 잎새들의 떨림이 뿌리에 가 닿듯이, 툭 던진 그 작은 에피소드가 찰나(刹那)에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끙> 소리와 함께 긴 한숨을 쉬게 했다.


자정을 넘어 귀가해 잠들기 전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다. 늘 신앙과 가족에게 소홀하지 말자. 읽고 쓰기에 게을리하지 말자. 건강에 유의하고 금주 아니 절주 하자. 그리고 어떤 프레임에서든 오만과 편견이라는 칼은 거두고 중용과 타협이라는 방패로 사고의 유연성을 다짐하자. 그리곤 허리를 곧추세워 눈감고 기도 손 한 채, 많이 듣는 것으로부터 지혜를 찾고 입안의 말을 적게 하여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뱃속에 밥이 적기를 기도했다.


밤 새 창 밖에선 는개가 하염없이 내렸고 오늘 새벽길은 안갯속에서도 환한 아침 해 쪽으로 길을 냈다.

                                            경남 함양 오도재에서 찍은 자동차의 궤적

매거진의 이전글 칼국수 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