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빵과 샤브레
누가,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나는,
긴 한숨을 내 쉬며, 아니라고 답한다.
이럴 때마다 단 크림빵이나 과자가 먹고 싶어 진다.
며칠 전 이른 퇴근길. 회사를 나서자마자 장대 같은 비가
내 뒤를 쫓아오다가 급기야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서는 심통을 부린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비라, 묵묵히 바라만 본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인 어느 여름날, 50여 년 전 그날에도 비가 오고 있었다. 부자(父子)는 양동이를 들고 집 근처 제2 한강교 (지금은 양화대교라고 불림) 밑 모래밭에서 조개를 잡아 귀가하던 길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근처 구멍가게에서 <삼립 크리ㅁ빠ㅇ>을 사 오셨다. (당시 가격으로 10원으로 기억한다)
다 젖은 옷에 살짝 떨면서 먹던 그 빵맛을, 아들은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마트 같은 곳에서 그 추억의 빵을 행사 용으로 묶어 팔 때면, 아무 생각 없이 한아름 사들고 집에 돌아와, 식구들로부터 며칠간 타박을 받곤 한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기에, 마지막 빵이 없어질 때까지, 그 핀잔은 오로지 아들의 몫이다.
아들은 그 역경(?) 속에서도 추억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자충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어제 요란한 비를 핑계로 추억을 씹을만했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 이른 저녁으로 김치전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튀김가루와 밀가루의 적당한 배합. 얇게 썬 쉰 김치와 오징어, 부추... 마지막은, 최대한 얇게 부치는 거다. 막걸리가 상위에 오르는 것은 당연. 이 작은 것으로도 행복하다.
마트에서 행사용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또 다른 추억의 떠오르는 과자 <해태 샤브레>. 지금은 그냥 그런 과자 취급을 받지만, 70년대엔 남의 집 방문 때, 선물용으로 사랑받던 최고급 과자였다. 초등학생일 때, 손님 덕택에 처음으로 먹어봤다.
겉 포장지에 프랑스 과자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새우깡, 꽈배기, 건빵 같은 하드 한 과자만 먹다가 샤브레의 첫맛은... 지금 생각하니 첫 키스 같다고나 할까. (첫 키스 때, 샤브레 맛을 기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 입에 넣으면 바로 녹아 버리는 그 과자를, 지금 이 나이에 마트에서 만날 때마다 자꾸 손이 간다. 촌스러운 입맛이라고 가족들이 놀릴 때도, 평소 단 맛과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크림빵과 샤브레는 맛은, 참 달콤하게 내 기억 저편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이런 기억이나 추억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나 잊고 싶은 기억이나 추억으로부터 무뎌져야만 하는 삶은 비참 그 자체다. 한갓 크림빵이나 샤브레 맛보다 못한 요즘의 내 삶이 초라하다. 내일이 중복이다. 어그제가 초복이었던 것 같은 데... 평소와는 다르게 이른 출근길에 나서면서 분황사 앞으로, 박물관 옆길로, 남산 삼릉 앞길을 둘러보았다. 무뎌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