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미루고 미루던 캘리그래피 수강신청을 했다. 접수 시간이 될 때까지 주위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눈을 감고 서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들었다.
요즘 글씨 쓸 일이 거의 없다. 회사에서는 다이어리에 간단한 메모와 이런저런 서류에 싸인. 집에서는 침대 머리맡 메모지에 가끔 떠오르는 상념들과 방금 꾼 꿈 이야기를 쓰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관심이 캘리그래피에 쏠렸다. 아름다운 서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캘리... 일단 쓴다는 아날로그적 느낌을 갖게 해서 좋았다. 밋밋한 글자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함을 넘어선 독특함을 표현을 할 수 있는 글씨라서 또 좋았다. 게다가 누구나 쉽게 글씨를 창조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어 더욱더 좋았다. 아날로그와 독특함 그리고 창조.
수습기자 시절, 소설가 최인호의 육필원고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건 글씨가 아니었다. 일부러 글씨체를 짓밟아 바람에 날려 보냈다가만 걸 잡아다가, 원고지에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무슨 글자인지 하나도 읽을 수가 없었다.
컴퓨터로 작업한 글은 ‘마치 기계로 만든 칼국수’ 같고 왠지 ‘성형 수술한 느낌’ 이 들어 원고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긴다는 그였다.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엔 최인호의 글씨를 해독하는 전문기자가 별도로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김훈도 연필로만 글을 쓴다-
그래도 어쨌거나 청년문화가 전무한 이 땅에서 그것을 최초로 개발한 작가가 최인호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청년 문화의 아이콘. 그렇게 생각을 잇다가 벌교에 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았던 몇 해 전 일을 더듬었다.
"일반인이 교양으로 읽으면 괜찮지만 대학생이나 노동자가 읽으면 이적 표현물 탐독 죄로 의법 조치한다." 1992년 대검찰청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그 책은 당시 이미 350만 부나 팔린 베스트 소설이었다. -지금까지 판매가 천 만권을 넘겼다고 함-
신문에서 그 기사를 읽고 논리적 모순에 쓴웃음 낫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반인은 누군가? 대학생과 노동자는 특별인 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대학생과 노동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일반인이고?. 그럼 대학교 휴학생은 반인반특(半一半特)? 일제 강점기 때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20여 년 전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문학관 1층에는 작품의 집필 동기와 구상, 자료, 조사, 출간 과정 등에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 질(총 10권)은 200장 원고지로 16,500매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 원고를 쌓아 놓으니 웬만한 농구선수 키보다도 높이가 높았다.
2층에 올라가니 독자들이 필사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그 책 말고도 그의 책 <아리랑-12권> <한강-10권>등 을 읽었던 터라 감회가 남달랐다. 한편에 비치되어 있는 태백산맥을 보고, 내 바로 전 누군가가 자필로 준비된 원고지에 옮겨 났다. 나도 그 뒤를 이어 내 글씨를 보탰다.
문득 작가가 그의 외동아들과 며느리에게 전권(全券)의 태백산맥을 필사케 한 얘기가 떠올랐다. 처음에 아들은 아버지가 권해서 그 책을 다 베껴 썼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아리랑>까지 필사했고, 며느리도 그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그는 이렇게 일갈한 적도 있다. “지식인으로 살아가려면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쓸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쓸 수 없다면 남의 소설이라도 베껴라. 그렇다 보면 분명히 문장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책을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의 필사가 독해에 더 도움이 된다.”라고.
나에겐 그런 열정이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그렇게는 못하겠지만 캘리그래피를 공부하면서 시를 옮겨 쓰고 싶다. 시를 쓸 재주가 없으니 그렇게라도 하면 정서적으로 좀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해 보면서...
깊은 새벽잠에서 깰 때가 요즘 잦다. 깨고 나면 좀처럼 다시 잠들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다가 기억하고 있는 시 구절이나 하이쿠(일본 특유의 짧은 시) 같은 것들을 읊조리며 다시 잠들길 애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