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뚜벅...

삶에는 비김이 없다

by 장영철 Francis

길을 걷는다

오르막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결국 오르막과 내리막은 비긴다


삶도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

그런데 비김이 없다

그게

나를 슬프게 한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하이커 (Hiker.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를 우리말로 뚜벅이라고 한다. 그 표현이 참 좋다. 며칠 전 오랜만에 감포에서 구룡포 그리고 포항까지의 바닷길을 차로 다녀왔다. 길 위의 뚜벅이들도 여전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썰물의 뒤안길에서, 습한 바닷바람과 마주하며 한참 먼 수평선을 응시했다. 구석구석 아직도 마르지 않은 흔적들이 여전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 ... ....


보문호반 길을 걷는 내내, 주위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보고, 호수에 덜 채워진 마른 물소리를 듣는다. 뚜벅뚜벅 걸으며 하는 생각은 이어지지 않고, 혼잣말은 서툴며, 햇빛의 질감은 약하다가도 강하다. 공허하다.


콜로세움 상가 앞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물너울 교를 지나, 경주 월드 울타리 근처에 세워진 허영자 시인의 시가 쓰인 돌비석 앞에 멈춘다. 소리 내어 읽어 본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열차를 놓친 일은 슬픈 일이다. 그건 이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게 잘된 일이고 그 덕에 들국화와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가슴의 저림과 남루함에 대한 역설이다. 자기 합리화다.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게다가 아름다움이 왜 쓸쓸한가. 이 모순어법에 시비를 건다. 그러다 말고 이 어법이 아니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애절한 그 뭔가를, 말하고 싶었을 시인의 맘을 가슴으로만 이해한다.

... ... ....


다음 날에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 그다음 날에도... 뻐근한 저항 하나 없는 평이한 황성공원 산책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하염없이 걷는다. 다가갈 수 없기에, 표현할 수 없기에, 멈추지 못하고 있다.


돌아보니 발자국이 소리 없이 따라오고 있다. 발자국은 삶의 흔적이자 세월이다. 그 발자국이 녹기 전에, 그가 어둠을 벗어 두고 갔다. 어둠 속에 남겨진 나는, 여전히 작두날 같은 경계에서 중얼거린다. 비김은 없을 것 같다고.


994EAA505B1F2D2D09

<뚜벅뚜벅뚜벅...> - 어느 해 여름. 이 길이 어디였는지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길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백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