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그 어느 하나 빛을 내지 않는 별은 없다.
나는 2022년 제2의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내 꿈은 유치원교사였다.
유치원 다닐 때 담임 김미애선생님을 보고 유치원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 되었고 정말 꿈을 이뤄 유치원교사가 되었다. 2021년까지 현장에 있었다. 꿈 같은 시간들...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마음만 가지고는 유치원에 있을 수 없게 됨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다.
임용시험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핑계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 상황에서 공부에 전념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이만이라도 없었다면? 아니 결혼만 안 했다면?'이라고 조금은 비겁한 변명을 해 본다.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에서도 일 할 수 있었다. 국공립 기관에서 세 번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작은 집단이 아닌 조금 더 나은 기관, 솔직히 말하면 관리자의 생각과 기분이 아닌 운영방침에 따라 원칙대로 운영이 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기에 조금 더 멀리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이 든다.
내 직업은 교육공무직인 특수교육실무사이다. 00 교육청 00 교육지원청 소속으로 유초등 특수학교에 발령받아 현재도 근무 중이다. 많은 직업 중에 왜 특수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교사시절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내 작은 관심과 관찰로 발달이 늦어 어려움을 겪었던 반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지만 학부모님과의 꾸준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했다. 검사와 적절한 치료를 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던 경험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소꿉놀이에서 아기역할만 하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다며 전화를 해 주고,
엄마와의 어려움, 원에서 친구들과의 어려움으로 맘을 닫았던 아이가 마음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형편이 어려워 치료가 중단될 뻔했지만 지역사회에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 치료를 유지하게 되기도 했다.
그때 그 보람이 강하게 남았었나 보다.
말 그대로 발달이 늦다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알아보고 조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시간은 너무 귀하고 늦은 만큼 계속 뒤처지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각자의 개성이 매우 뚜렷하고 각자의 개성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뽐내기 바쁘다.
많이 미화를 한 것일까?? 특수학교이다 보니 중도중복장애 학생들이 많다.
늘 긴장 속에서 있다 보니 일과가 끝나면 몸을 눕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등교 때부터 내 눈과 귀는 아이들에게 쏠려있다.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
에피소드를 하나 말하자면, 남편과 산책을 할 때 손을 잡고 걷는다.
남편이 이야기한다.
"손을 왜 이렇게 꽉 잡아? 너무 당기지 마. 맞춰서 좀 걷자"
아... 습관이 무섭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과 마음은 그렇게 셋팅이 되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우리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니던 습관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다 보니 나는, 내 몸은 뒷전이 된 지 오래다.
방광염과 몸살약과 소화제도 상시 지니고 다니게 되었다.
그래도 사랑스럽고 순수한 우리 아이들이 주는 행복이 크기에 학교가 좋고 아이들이 좋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보일 때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내 노력이, 내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해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닌가.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 2년 동안 자원봉사를 했었다.
그때 특수학교에 걸려있던 문구가 너무 인상적이라 마음에 새기면서 일하고 있다.
"수 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그 어느 하나 빛을 내지 않는 별은 없다."
나는 그 별이 자신의 빛을 마음껏 반짝반짝 빛날 수 있게 더 깜깜하고 어두운 밤하늘이 기꺼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