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긴, 튼튼한 거미줄처럼
따뜻하고 향긋한 커피 향에 이끌려 카페로 발길을 잇고,
공기에 가을 한 꼬집 넣어 간질 찡끗 찌릿한 계절성 알레르기로 병원으로 발길을 잇는 <가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무언의 약속을 한 듯 첫눈과 함께,
각자의 삶 속에 충실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로를 다독이는 <겨울>
동식물, 사람들의 잠재워진 부지럼함을 톡톡 자극하고
온통 여린 연둣빛, 연핑크빛, 연노랑빛으로 싱그러움이란 필터를 씌운 것 같은 <봄>
짙은 초록빛 녹음이 아주 늠름한 청년의 기상과 살짝의 무모함을 닮아서
"젊음"이란 단어로 그냥 단정 짓고 싶은 <여름>
2024년 10월 5일부터 지금까지... 사계절을 보낸 내 겹벌이로써의 1년을 나름 정의해 본다면 이러하다.
시내와 조금 떨어진 외곽에 물도 있고 나무도 있고 거슬림 없이 하늘도 펼쳐진 자연과 어우러진 곳이다.
어김없이 난 출근을 해 제2의 피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앞치마를 두르고 맨 먼저 홀을 재정비한다.
주어진 시간 내에 해야 하기 때문에 몹시 바쁘다.
2층 계단을 훔치며 내려오는데 정말 신기한 것이 첫 번째 계단,
맨 왼쪽 위 모서리를 매일매일 닦았는데도 늘 거미줄이 있다.
하....
'뭐야, 얘는 왜 이렇게 부지런한 거야? 어제 청소할 때 치웠는데 또 짓고 또 짓네'
'곤충 중에 제일 부지런한 녀석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다 문뜩 재미있는 생각이 스친다.
나만의 상상으로 거미에게 내적 대화를 시도한다.
나 : 거미야, 너 왜 이렇게 부지런한 거야? 어제 내가 틀림없이 치웠는데 또 집을 짓고 있어~~~
거미: 야~생각을 해봐. 내 집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 그걸 질문이라고 하고 그래.
너야말로 너는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종일 있다가, 큰 딸 픽업해서 학원 데려다주고 카페는 왜 와?
너무 바쁘고 힘들지않니??
나: 글쎄.... 학교는 본업이고 담임선생님과 우리 아이들의 하루 일과가 순조로우려면 내 할 일을 해야지.
딸도 픽업해서 데려다주는 시간이 사실은 내 쉬는 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 딸이 도로에서 시간 허비하는 게
아깝잖아. 그리고 두 딸이 연년생이라 곧 대학 간단 말이야. 벌어야지~집에서 멀뚱이 뭐 해.
그냥 하는 거지.
거미야, 솔직히 얘기해 봐. 너 내가 밉지? 맨날 와서 집 부시고 가니까 말이야.
거미: 당연한 거 아니야?! 너 진짜 너무해~~ 맺힌 게 많아.
나도 그 집 지으려면 하루 꼬박이야. 네가 그렇게 부시고 가면 진짜 속상하고 화나.
어떻게 하루도 안 거르고 맨날 부시냐!!
나: 그렇지?? 내가 미울 거란 생각은 했었어. 입장 바꿔 생각해도 그렇지... 미안해.
거미: 뭐야~너 그렇게 나오면 내가 되려 미안하잖아.
나: 사실 나도 네가 야외 테이블이나 자작나무 숲 쪽에 있음 안 건드려.
근데 위치가 딱 눈에 띄는 곳이라 손님들 보기에 좀 그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땡땡이치고 청소 안 해서 그렇다고 오해한다니까.
거미: 그럼 내가 어떡하면 될까?
나: 여기 있음 나도 너도 힘드니까 이사 가면 어때? 우리 카페 야외 뷰가 최고거든.
거미: 그려, 그럼 가족들하고 상의해 볼게.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니까 후련하다.
나: 나도 그렇다. 나한테 주어진 일이라 열심히 청소한 건데 너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거미: 나도 살려고 집 지은 거고 너도 돈 벌어 살려고 그런 건데 뭘.... 이해해.
나: 이해해 주니 고맙다. 그리고 너 쫌 멋지다... 책임감 멋있어.
거미: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지.
00야, 너도 너무 애쓰지 마. 적당히 해. 학교는 네가 없어도 굴러가고. 딸도 그 나름의 생각이 있을 거야.
가늘고 길고 튼튼한 내 거미줄처럼 그렇게 살아.
나: 그래도 될까? 나도 요즘 그렇게 생각하고 되뇌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거미야, 고마워.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다니.
그리고 이사 가면 잘 살고 행복해.
거미: 그래, 00도 아프지 말고 잘 살아.
거미에게도 나에게도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 것인데... 살려고 말이다.
상상으로 시작한 이야기에 내 마음가짐을 투영해 본다.
가늘고 길고 튼튼한 거미줄처럼 그렇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