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먹을 수 있겠지?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횡단보도를 건너 인근 도서관에 주차한 차를 향해 부지런히 걷던 중 눈길을 끄는 노부부가 있다.
아파트 조경수들을 가리키며 한 참을 살피는 그들이 너무 다정하다.
'어쩜 저렇게 다정하지?'
나도 저렇게 늙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내가 본의 아니게 그들의 뒤통수에 레이저를 쏜 것일까,
아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는데 내가 딱 그 짝이다.
나도 모르게 이실직고를 하고 있다.
"두 분이 너무 다정하셔서 보고 있었는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여기 매미 허물이 너무 신기해 산책하다 아버지랑 구경하고 있었어요"
모자를 쓰셨기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나 보다.
아버지와 딸이셨다. 지팡이를 짚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운동 겸 산책을 나오신 모양이다. 머리에 눈이 내린 연로하신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애가 내 딸이에요. 공부를 잘해서 초등학교 교장까지 하고 퇴직했는데 너무 예쁘지요?"
"네 아버님~훌륭한 따님을 두셨어요."
딸은 본인 칭찬을 처음 보는 낯선 이와 한다는 이 상황이 재미있으신지 웃어 보이신다.
그렇게 잠시지만 낯선 부녀와 대화를 하고 헤어진다.
출근길 내 머릿속엔 우리 아빠 생각으로 가득 찼다.
'우리 아빠라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실까?
나를 누구보다도 예쁘다고 하실까?'
난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예쁘지도 않으니까.
에피소드 하나 말하자면,
결혼하게 되어 상견례 자리에서 아빠는 예비사돈에게 나를 이렇게 칭찬하셨다.
"우리 애는 못생겨도 성격은 좋아요."
헉!!!!!!!! 아무리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지만 딸을.... 못생겼다니!!!
낯간지러워 칭찬을 못하시는 아빠가 딸을 칭찬하는 최대의 표현이셨던 것인데
다소 충격이었다.
또 어릴 때 아빠가 끓여주신 야식 라면,
나는 그 라면을 잊을 수 없다.
아직도 인사말이 "밥 먹어니껴?"인 우리 부모님.
그렇게 끼니가 중요했던 시기를 겪으셔서 그런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에도
사위가 오면 갓 지은 밥을 주시고 정시에 식사를 하시는 우리 부모님.
그러기에 겨울철 긴 밤은 야식이 꼭 있어야 했다.
우리가 즐겨 먹던 야식은... 찐 고구마, 홍시, 구운 가래떡, 옥수수튀밥, 안동식혜였다.
그런데 그 건강한 야식 말고 아빠는 자극적인 맛이 그리우셨던 때가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일 때, 잠든 나를 아빠가 몰래 흔들어 깨우셨다.
삼남매 중 나만.
<안동사투리 버전-속삭이는 중>
"숙아, 숙아, 자나??"
"왜~~~"
"우리 라면 끼리 먹으까?"
"라면 있나?"
"없지~~ 담뱃집에 가서 외상으로 신라면 2개만 가져 온나."
"돈은요?"
"엄마가 준다고 해라"
내복에 잠바만 입고 담뱃집에 가 문을 두드리면 아지매가 나왔다.
외상이라고 해도 선뜻 라면을 주신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는 돈이 없어 외상을 해야 하는 것이 살짝 민망하셔서 나를 보내신 것 같다.
그때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아빠 나이가 되어보니 이해가 된다.
그 사이 아빠는 라면 물을 끓이고 나를 기다리셨다.
계란, 파 같은 부재료를 전혀 넣지 않은 신라면이란.... 꼬들한 면발에 얼큰한 국물
나는 특히 건더기 스프 중 버섯을 좋아했다.
그때 그 식성이 있어서 인가 지금도 부재료를 넣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배가 두둑해지면 잠도 잘 오는 법, 진한 라면 냄새와 함께 잠이 들었다.
라면을 먹는 우리를 엄마가 모를 이 없었는데 그냥 계셨다,
또 묵묵히 외상값을 갚으셨다.
이번 추석에 안동에 가면 아빠에게 라면을 끓여봐 달라고 할 작정이다.
추운 겨울, 긴 밤 출출함을 달래주던 외상 라면맛이 그대로일지 기대해 본다.
또 아빠 맏딸이 예쁜지도 다시 물어보리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