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마음

27년, 숙이를 위한 케이크

by 오롯이

9월 18일은 내 둘째 딸의 17번째 생일이다.

전날 장을 보고 당일 이른 조퇴를 해 분주히 움직여 저녁상을 차렸다. 다행히 학원 가기 전 먹이고 보내서 뿌듯했다. 아니면 내가 퇴근하고 학원이 끝난 10시가 되어야 저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밥을 먹지 못하니 생일상을 차려 줘야겠다는 생각이 가족 생일 때마다 든다.

책임감과 미안함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싶다.

딸을 위해 남편이 만든 케이크

내 생일날을 회상해 보자.

내 생일은 음력 12월 23일... 나에게 생일은 그다지 좋은 날은 아니다.

어릴 때는 울었고 삐져있었으며, 청소년이 되어서는 체념하게 이르렀다.

이유는 내 생일 다음 날이 할머니 생신이셨기에 내 생일은 늘 뒷전이었다. 친척들이 모이지만 할머니 생신 때 그 미역국을 같이 먹어야 했고 고모가 케이크라도 사 오면 아빠는 매몰차게 말씀하셨다.


"숙아, 내일 할매 생신 때 쓰고, 같이 먹자."


엄마도 아빠랑 같은 생각이신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으시는 것이 너무 야속했다.

아..... 그 케이크도 내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케이크 얼마한다고...' 하겠지만 그 당시 시골 형편에서는 굳이 없어도 되고 케이크 살 돈이면 다른 찬을 하나 더 올릴 수 있는 음식이었다.

어린 꼬맹이 숙이가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TV에서 처럼 촛불 켜고 가족들의 박수와 노래로 주인공이 되는 그 순간.

소원을 빌면서 촛불을 있는 힘껏 꺼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현실 속 숙이는 이불 뒤집어쓰고 울다 지쳐 잠들기를 매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친구들과 생일을 챙길 청소년이 되었는데 생일마다 겨울방학이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래서 어린 숙이는 생각 했다.


'난 나중에 아기 낳으면 절대 혼자만 생일인 날 낳아 야지. 방학 때도 절대 안 낳을 거야.'


그렇게 크면 클수록 생일에 무뎌졌다. 내가 생일을 챙기게 된 걸 되짚어 생각하고 생각해 보자면 지금의 남편과 연애할 때 같다.

동갑내기인 우리, 용돈을 아끼거나 하루 이틀 바짝 할 수 있는 막일을 해서 자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나를 위해 꽃도 사고, 편지도 정성스레 써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수도 사줬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남편이 사준 첫 향수는 <안나수이의 '돌리걸'>이었다. 얼마나 감동이고 좋았던지 모른다.

25년 1월 딸들이 만들어준 케이크

내가 아빠에게 오롯이 위한 생일 케이크를 받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2008년 2월. 결혼하기 전 집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생일날이다. 할매가 살아 계셨는데 아빠가 숙이를 위해 케이크를 사 오셨다.

"숙이 시집가기 전 마지막 생일인데 케이크는 한 번 사주고 보내야지"


반구형 핑크 곰돌이 모양의 케이크였다.

꼬맹이 숙이가 아주 좋아했을 사랑스럽고 귀여운 케이크였다.

말 그대로 숙이는 촛불 켜고 가족들의 박수와 노래로 주인공이 되는 그 순간이었고 소원을 빌면서 촛불을 있는 힘껏 불어 껐지만, 소원을 빌 때 눈을 감은 숙이는 애써 눈물을 참느라 소원을 빌지 못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아빠가 숙이를 생각하면서 골랐을 이 케이크가 너무 아깝고 귀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 모니터가 흐릿흐릿, 일렁일렁 춤을 춘다.

27년 동안의 서러움이 입 안에 생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지금은 매년 축하 메시지와 금일봉을 주시는 우리 아빠시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 케이크 하나 못 사준 아빠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지 알 것 같다.

생일날 외식을 하더라도 같이 있어줘야 하는데 나는 저녁 알바를 하러 가야 했고 미안함에

직접 생일상이라도 차려 축하의 마음을 전해주고자 했음을 딸이 알지 모르겠다.

아니 아는 것 같다. 평상시 좋아하지 않는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잡채와 전, 불고기까지 다 비웠던 것은 준비한 엄마 마음을 알아서였다고 생각이 든다.


나의 어린 시절,

숙이의 생일과 지금 우리 딸의 생일날 모습은 다르지만 거기에 담긴 부모의 큰 뜻은 똑같음을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안동 부모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은 오후다.

마음을 진정하고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숙이-내가 안동집에서 불리는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은 정말 우리 가족만 안다.

작가의 이전글알아냈다!